유럽의회, 집행위 결정 뒤집고 원전 배제 결의안 채택
K택소노미 미칠 영향에 업계 ‘촉각’…정부 “국내와 무관”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한 유럽연합(EU) 집행위의 결정에 제동이 걸린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식품보건위원회는 지난 15일(한국시간) 열린 합동회의에서 원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76표와 반대 62표, 기권 4표로 채택했다. 지난 2월 EU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과도기(Transitional) 단계로 포함할 것을 제안한 EU 집행위의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유럽의회는 "지속 가능한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원전과 천연가스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두 에너지원은 택소노미 규정에 명시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의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유럽의회가 원전과 천연가스를 전격 배제한 배경에는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와 우라늄 의존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U는 지난해 기준 가스 수요의 약 40%, 농축우라늄 수요의 2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와중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EU택소노미에 포함한다면 결과적으로 러시아에 예속되는 것을 용인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며 유럽 현지의 고민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이에 따라 현 정부의 정책 향방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에는 천연가스가 포함되고 원전은 배제돼 있었다. 현 정부 출범 후 환경부를 중심으로 원전을 포함한 K택소노미 수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같은 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전이 친환경 녹색에너지로 분류되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라며 "지난 정부에서 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원전이 밀린 거 같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믹스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우리나라와 EU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유럽의회의 결의안 제출과 관련해 국내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당시 원전을 포함한 EU택소노미 최종안도 함께 발표되는 바람에 한동안 논쟁거리가 된 것일 뿐 EU택소노미 진행 경과에 국내 정책이 휘둘릴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과 에너지기본계획 등에 원전을 비중 있게 포함시킨다는 복안에 따라 EU의 정책 동향을 근거로 K택소노미에 원전을 배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업계는 EU택소노미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지난달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후 한미 양국이 합의한 '원전동맹'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체코와 폴란드, 네덜란드 등이 여전히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데다 최근 초당적인 지지 속에 미 연방의회를 통과한 원전수출법안은 이들 수요국에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방안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원전 공급망 구축이 가속화되고 있어 만약 EU택소노미에 원전이 배제되더라도 우려만큼 유럽의 신규 원전 건설 움직임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