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이후 40년간 유지돼 온 정부 주도 원전 사업 재편 필요성
지난 2011년 최초 민자원전 검토 후 SMR 급부상에 또 한번 기대감

지난 1978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첫 운전을 개시하며 이후 40년 동안 공고히 유지돼 온 정부 주도의 원전 사업 시작을 널리 알렸다.
지난 1978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첫 운전을 개시하며 이후 40년 동안 공고히 유지돼 온 정부 주도의 원전 사업 시작을 널리 알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지난 1978년 4월 첫 운전을 개시하며 이후 40년 동안 공고히 유지돼 온 정부 주도의 원전 사업 시작을 널리 알렸다.

고리 1호기는 한 차례의 계속 운전을 거쳐 지난 2017년 6월 영구 정지됐지만,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한 총 28기의 상업용 원전이 모두 같은 방식에 따라 건설 및 운영돼왔다.

이 과정에서 1980년대에 기술 자립을 목표로 구축된 원전 산업 체계도 명맥을 그대로 이어왔다.

사업자인 한수원을 필두로 원자로 설계와 원자력연료 생산, 시공, 주기기 제작까지 균형 잡힌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어느덧 정부 주도의 원전 사업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형성됐다.

하지만 국영 원전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는 평가도 업계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부 주도 방식은 정권에 따른 정책 리스크에 쉽게 노출돼 있는 데다 SMR은 민간이 원전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문턱을 크게 낮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민간 주도로 원전 사업을 추진하고 생태계를 재편하는 게 정치적인 입김에서 벗어나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고리 1호기 건설현장. 
고리 1호기 건설현장. 

◆민자 원전 과연 가능한가…민관 합자 방식은 가능, 한 차례 검토 진행

국내법상 민간 단독으로 원전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촘촘한 규제에 가로막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표적으로 전기사업법에 따른 발전사업허가를 획득하는 문제와 중대사고 발생 시 손해배상에 대한 보험 가입 문제 등이 거론된다.

모두 발전사업자인 한수원만이 충족할 수 있는 조건으로 민간이 원전 사업을 영위하려면 한수원과 함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민관 합자 방식이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이 방식은 지난 2011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작성한 '원전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간참여 타당성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한 차례 제안된 바 있다.

당시 지식경제부 용역을 받아 작성된 보고서는 한수원 주도하에 민간과 별도의 SPC를 설립해 신규원전 사업을 수행하되, 한수원이 지분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민간의 참여와 지역 수용성 제고 차원에서 지자체 및 지역주민조합의 지분참여 방안을 제안했다.

이 같은 방식에 따르면 한수원이 사업 전면에 나서기 때문에 발전사업허가 획득과 중대사고 발생에 대비한 보험 가입 등을 비교적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한수원이 민간에 원전 운영 노하우를 자연스레 전달하고, 지역주민도 원전 운영에 따른 수익을 배분받게 됨에 따라 주민 수용성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묘안으로 평가받았다.

사안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실제 지난 2010년대 초 영덕 천지원전에 한수원이 지분 51%를 보유한 SPC를 설립하고, 민간과 지자체가 지분을 투자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가 진행됐다"며 "당시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이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앞서 민자 원전 건설의향서를 제출하거나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물산은 원자로 설계인력을 포함해 상당한 수준의 사전 투자를 단행해 업계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는 게 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하지만 민간이 꿈꾼 최초의 민자 원전은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인한 대내외적인 사업여건 악화로 이내 물거품됐다.

신고리 5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후쿠시마 사고로 물거품 된 최초의 민자 원전…여전히 살아 있는 불씨

영덕 천지원전에서 싹튼 민자 원전의 불씨는 최근 SMR의 등장을 계기로 다시 한번 불타오르고 있다.

그동안 민자 원전에 관심을 보인 국내 기업이 미국 SMR 기업과 손잡고 일제히 해외시장 진출을 타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삼성물산과 GS에너지, 두산에너빌리티가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와 함께 글로벌 사업 협력에 나선 데 이어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 인터내셔널(Holtec International)의 SMR-160 모델에 대한 글로벌 시공권을 확보하고 원전 전주기에 걸친 협력에 나섰다.

이들의 SMR 사업 방식은 앞서 지난 2011년 검토됐던 민관 합자방식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자로에 대한 소유권을 보유한 미국 SMR 기업과 국내 시공사와 주기기 제작사 등이 지분을 공동 투자해 발전사업자와 EPC 계약을 체결하거나 향후 민자발전 사업(IPP; Independent Power Producer)에 참여하는 두 가지 방안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이 해외를 무대로 민자 원전 사업에 속도를 내자 십여 년 전 업계를 뜨겁게 달군 민자 원전을 국내에서도 다시 한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민자 원전의 가장 큰 장점은 공기업과 달리 비교적 운신의 폭이 넓은 민간이 참여함으로써 사업 추진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여기에 지자체가 플레이어로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원전 특유의 낮은 주민 수용성 역시 기존 원전사업보다는 원만하게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특히 "새 정부 중점 과제인 원전 수출 역시 민간이 한수원과 함께 사업자를 구성하면 마찬가지로 사업 수주 성공률을 보다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자 원전, 국내 판도 어떻게 뒤흔들까…관건은 규제기관 전문성 확보

현재 석탄과 LNG 발전은 모두 민간이 유입돼 발전공기업과 경쟁체제를 갖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민자 원전은 민간 자본 유입으로 신규원전 건설 과정에서 한수원의 재무부담을 낮추는 한편 전체 발전비중의 약 28%를 차지하는 원전 시장에도 경쟁논리의 본격적인 도입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원전에 민자 석탄발전과 유사한 사업구조가 도입되면 민간이 정치적인 입김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진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공기업 주도로 원전 건설이 이뤄지다보니 정부 정책에 따라 산업계의 수주량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지난 5년의 교훈"이라며 "민자 원전이 도입되면 건설단가는 국영 원전보다 오를 수밖에 없겠지만 생태계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는 호재"라고 설명했다.

다만 가장 큰 관건은 결국 규제기관의 전문성이라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필요에 따라 외국 노형에 대한 심사는 물론 국영 주도 방식 아래 느슨하게 진행돼 온 규제 심사가 속도감 있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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