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새 정부의 6대 추진 방향과 110개 세부 수행과제를 발표하였다. 산업분야 과제에서 단연 눈에 띄는 항목은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 이다.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했을 때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환영에 앞서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정부 정책이 이처럼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앞으로는 더 이상 없어야 하겠다. 

2008년에 발표된 1차 에너지 기본계획안에는 2030년까지 원전 설비 비중을 41%까지 늘이고 원전 발전량 비중을 2007년 36%에서 2030년 59%로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더욱이 2009년 UAE로부터 한국형 원전 APR1400 4기를 수주한 것을 계기로 원전을 수출사업으로 본격 육성하기로 하고 2039년까지 80기를 수출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원자력 관련학과 개설 국내 대학이 5개에서 15개교까지 확대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원자력 전문대학원'이 설립인가를 받은 것 역시 2009년이었다.  

공교롭게도 2011년 3월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발생함으로써 무르익기 시작했던 원전건설 붐은 한동안 다시 주춤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은 2018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전임 정부들의 정책과는 정반대로 급격한 원전감축을 주요정책기조로 삼았다. 독일의 에너지정책을 모델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전력 수입국이면서 수출국이다. 천연가스를 가스관을 이용해 수입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중을 30% 이상 높여도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같은 사실을 의식한 듯 우리도 러시아와 사이에 천연가스 관로를 연결하고 동북아 전력망과 연계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유관 정부관계자와 연구기관으로부터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이 이처럼 빨리 눈앞의 현실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천연가스 수입량의 5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더욱이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 움직임에 따라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위해 원자력회귀 움직임을 보이던 프랑스, 체코,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의 나라 외에 다른 유럽 국가들까지 원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전문가로 불리는 피터 자이한이 "유럽은 친환경 발전을 할 역량이 없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이 큰소리치는 지역이다"라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닌 듯 느껴진다.

이렇듯 에너지 문제는 경제문제이자 정치문제이고 동시에 안보문제이기도 하며 더 정확히는 생존의 문제이다. 애초에 이념이나 신념으로 접근을 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지식의 착각은 우리가 스스로 얼마나 이해하는지 자주 혹은 깊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식의 착각'의 저자 스티븐 슬로먼이 한 말이다. 

새 정부는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 강화'와 함께 '에너지 안보 확립 및 에너지 신산업 창출' 그리고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 마련' 3가지를 에너지 분야 중점과제로 제시하였다. 바람직하기도 하고 늦었지만 다행스럽기도 하다.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반드시 에너지정책이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잊어서는 안되는 원칙이 있다. 첫째, 이념이나 신념이 아닌 철저하게 사실과 법률에 근거해서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둘째,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 즉 국익과 국민적 공감을 중시하여야 한다. 셋째, 국내외적 협력과 협조체제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넷째, 일방적 희생이나 부정하게 이득을 취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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