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대기업도 사업에 참여할 의향은 있습니다. 사업이 첫발을 떼려면 규제부터 풀려야 할 텐데 현 정부에 과감한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반신반의하는 거죠. 정권이 교체돼야 사업이 추진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큽니다."

경북 울진 한울원전 인근에 조성할 '원자력 활용 그린수소 생산·실증단지' 사업의 타당성 연구용역을 수행한 관계자의 대답이다. 탈원전 정책의 그늘에 사업 추진 동력을 얻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자조 섞인 발언인 셈이다.

지난 5년간 원자력은 '금기어'에 가까웠다. 각종 정부 계획에서 원자력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는 분위기 속에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생산도 옵션에서 배제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원자력 수소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단가경쟁력에 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의 목표 생산가는 2030년 kg당 3500원, 2050년 kg당 2500원이다. 연구에 따르면 원자력 수소는 kg당 3000원 안팎의 생산가를 보여 정부의 2030년 목표보다 낮은 가격에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촘촘한 규제의 덫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당장 연구개발(R&D)과 실증단계부터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다. 수소법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 수소 R&D와 실증과 관련된 내용이 통째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수소생산 실증을 성공리에 마치더라도 상용화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등장한다. 전기사업법상 한수원의 수소생산은 원천 봉쇄된데다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따르면 수소기업은 한수원이 생산한 저렴한 전력을 직접 구매할 수도 없다.

이쯤 되면 이렇게 높은 규제 장벽에도 원자력 수소에 관심을 보인 대기업의 면면이 궁금해질 법도 하다. 제보에 따르면 주인공은 철강업계로, 원자력 수소가 아니면 수소환원제철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철강업체 한 임원은 지난해 열린 각종 수소 포럼에서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생산의 필요성을 주장하곤 했다. 액화수소든 암모니아든 국내 도입 과정에서 붙는 운송비를 고려하면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던가. 두 달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원자력 수소에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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