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E정책 핵심에 원자력…원자력 수소생산 실증에 ‘주목’
“수소법·전기사업법·K-택소노미 등 제도적 장벽 해소” 지적도

미국 애리조나주에 소재한 팔로 베르데(Palo Verde) 원전 전경.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원자력이 새 정부 에너지정책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원자력 수소가 규제의 고삐에서 풀려날지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의 목표 수소생산가는 2030년 kg당 3500원, 2050년 kg당 2500원이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원자력 수소는 kg당 3000원 안팎의 생산가를 보여 정부의 2030년 목표보다 낮은 가격에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수소 수요처인 수소터빈과 수소환원제철의 경제성은 수소가격에 달려 있다는 분석과 함께 원자력 수소도 하나의 옵션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전문가는 여전히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고온수전해, 초고온가스로 국내 연구개발 현황을 고려할 때 R&D와 실증, 상용화를 가로막는 각종 빗장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목받는 원자력 수소 생산…새 정부도 밀어주나

현재 원자력 수소생산은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이 모두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다만 현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비롯한 각종 법정계획에 원자력이 배제되는 분위기 속에 원자력 수소 역시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 배제된 바 있다.

하지만 180도 바뀐 에너지정책을 앞세운 새 정부 하에서는 원자력 수소기술 개발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집에 따르면 "무탄소화에 필수적인 원자력 수소 기술개발은 미국, 프랑스 등에서 진행 중이나 현 정부는 탄소중립 계획에서 원자력 수소를 배제했다"며 ▲수소병합 원전 개발 및 수출 상품화 ▲수소 생산과 연동 용이한 혁신형 SMR 개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같은 새 정부 방침에 따라 경북 울진에 추진 중인 국내 최초의 원자력 활용 수소생산 실증사업의 귀추가 주목된다.

업계에 따르면 '원자력 활용 그린수소 생산·실증단지' 조성 사업은 올해 상반기 내에 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을 목적으로 타당성 연구용역이 진행 중에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신한울 3·4호기 부지 인근에 한울원전과 연계한 5MW급 저온수전해 수소생산 시스템 구축 및 실증(1단계)과 국내 기술을 이용한 50kW급 고온수전해(SOEC; Solid Oxide Electrolysis Cell) 시스템, 해외 기술 도입을 통한 100MW급 SOEC 시스템 개발 및 실증(2단계)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이밖에 수소 생산용 고온가스로(HTGR; High Temperature Gas Reactor) 기본설계 개발도 이 사업에 포함돼 있다. 기본설계는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되 인허가 및 후속설계, 건설 등은 추후 민간재원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빗장 투성이' 원자력 수소…수소법·전기사업법·K택소노미 손봐야

원자력 수소는 우수한 단가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이를 둘러싼 제도적인 여건이 녹록지 않아 원전사업자인 한수원과 수소생산업자의 실제 사업 참여를 유도하는 데 한계가 명백하다.

고온수전해와 초고온가스로의 연구개발(R&D)과 실증을 추진하려면 자금지원이 급선무인데 관련 법 규정이나 제도에는 원자력이 통째로 빠져 있다. 원자력 수소사업의 첫 발을 떼기도 버거운 셈이다.

현행 수소법은 수소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금의 범위와 함께 시범사업 대상, 보증·융자절차 등 각종 지원 사항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수소기업에 선정되면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연기금 투자를 받을 수 있다.

또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는 녹색경제활동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금융기관의 대출과 채권발행지침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수소법과 K-택소노미에는 원자력 수소 R&D와 실증과 관련된 내용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에 이에 소요되는 자금지원 통로가 사실상 막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미국이 지난해 통과된 인프라법안에 따라 애리조나주에 소재한 팔로 베르데(Palo Verde) 원전에 원자력 수소 단지를 조성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미국은 해당 법안에 따라 오는 2026년까지 5년 동안 총 80억달러(약 9.6조원)을 투입해 4개 이상의 수소산업 허브를 조성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팔로 베르데 원전이다.

원자력 수소 실증을 성공리에 마치더라도 상용화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전기사업법상 겸업금지의무를 지는 한수원이 과연 발전사업 외에 수소생산을 할 수 있는지도 문제된다.

전기사업법은 발전사업자의 겸업을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인정하고 있는데, 해당 조항을 엄격히 해석하면 한수원의 수소생산은 법적으로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다.

한편 수소기업이 한수원으로부터 전력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수소를 생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강제풀(Mandatory Pool)로 운영되는 전력시장의 규칙에 따르면 수소기업은 발전사업자로부터 직접 전력을 구입하는 전력구매계약(PPA; Power Purchase Agreement)을 체결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자력 수소생산의 제도적 여건을 연구해온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직접 구매를 허용하더라도 그만큼 일반 전기소비자가 지불하는 전기요금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며 "결국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원자력 수소 기술개발과 실증, 상용화를 원활하게 추진하려면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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