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급망 위기에 자원 매각 재검토…헐값 매각 멈추고 사업 지속 가능성 열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자산 전면 매각’의 정책 기조를 완화키로 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알짜배기 자산들마저 헐값에 매각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광물 가격이 치솟고 공급망 불안이 커지면서 해외 각국들이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자 우리 정부도 정책을 선회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해외 자원 개발 백지화한다던 문재인 정부, 공급망 위기에 매각 재검토

정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공공기관 투자 해외자산의 매각을 재검토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최근의 글로벌 공급망 환경변화를 고려해 핵심광물의 국내 공급망 안정화 측면에서 중요한 자산에 대해서는 국내기업 우선 매각 또는 지분 보유 등까지 포함해 해외자산관리위원회를 통해 매각의 적정성·타당성을 신중하게 재검토하겠다는 것이 산업통상자원부 측 설명이다.

정부가 해외 자산 매각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이유는 최근 코로나19, 탄소중립 등으로 글로벌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망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한국이 자원전쟁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해외 자원 개발에 대한 현 정부의 기조가 신규 투자 등으로 뒤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강경하게 추진해왔던 ‘자원 외교 백지화’ 방침은 선회를 하게 된 것이다.

◆자원 개발은 정쟁거리…정권 때마다 기조 달라져

김대중 정부 들어 해외 자원 개발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10년간 추진 방향을 설정하는 ‘해외 자원 개발 기본 계획’을 처음으로 수립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아프리카와 몽골 등의 해외 광산 비중을 높이는 등 자원외교에 적극적이었다. 2006년 세계 3대 니켈 광산인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 개발 사업에 한국이 참여하기로 확정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자원외교 성과로 꼽힌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한 추진력을 갖게 됐다. 자원 보유국과 협력하는 자원 외교를 정책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자원 공기업을 대형화해 석유·가스·광물 확보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암바토비 광산에 대한 후속 투자, 코브레파나마 구리광산 등 세계 각지에서 신규 자원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원외교는 사실상 중단됐다. 여기에 당시 세계 석유·가스, 광물 등 가격이 크게 하락하며 자원 개발의 필요성은 계속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적폐로 취급 받았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 관련 수사가 다시 시작됐고 산업부는 ‘해외 자원 개발 백지화’ 방침 아래 국내 공기업의 모든 해외 광물자산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해외 광물자원 개발사업 2012년 219개에서 2021년 94개로 급감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17년 해외 자원 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TF는 이듬해 자원 공기업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해외 자원 사업을 정리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해 4월에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대한 출구 전략을 수립하고 한국석유공사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처분할 것을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관련 공기업들의 해외 자산 헐값 매각이 이뤄졌다.

석유공사는 지난 2009년 7억만 달러에 사들인 페루 석유회사를 지난해 초 236만달러에 매각했다. 투자 금액 대비 회수율은 13%에 불과했다.

광물자원공사는 현재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한국광해광업공단으로 통합되기 전에 구리 광산을 헐값에 넘겼다.

지난해 초 캐나다 캡스톤마이닝은 광물자원공사의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광산 지분 30%를 매입했다. 광해광업공단은 호주 와이옹 유연탄 광산을 비롯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등 15건의 사업 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공기업이나 민간기업·개인이 지분 투자 등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해외 광물자원 개발사업은 휴광을 제외하고 94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말 219개에서 57%나 급감한 수치다.

◆미국·중국·일본 등 핵심 광물자원 확보 위한 경쟁 치열

한국이 서둘러 해외 자원 사업을 축소하는 사이 해외 각국에서는 핵심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와 미·중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광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안정적으로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해외 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프리카 최대 구리 생산국이자 전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국인 콩고에 구리 광산개발뿐 아니라 이를 수송하기 위한 도로 개발, 채무 탕감 등을 추진하며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리튬과 니켈의 공급원 확보를 위해 해외 자원 개발의 정부 출자 한도를 확대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자국 내의 리튬 생산 기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한편 희토류, 리튬, 붕소 등과 같은 전략자원을 국내에서 개발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원 전쟁 속 한국 낙오 가능성…자원 개발 다시 나서야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해외 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으며 한국도 지금이라도 적극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적 ‘자원 전쟁’ 속에서 한국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자원 개발을 정쟁거리 삼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다른 업종과는 달리 당장에 성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면서 "해외 자원 개발은 특수성을 보이는 만큼 긴 호흡으로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분야만큼은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통해 산업에 필요한 자원은 확보하고 이미 확보된 것은 잘 지켜야 한다"면서 "다음 정부는 공기업과 민간 기업이 협업을 할 수 있는 협력적인 정책을 수립해 지속가능한 자원 관리를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같은 상황이 아시아권에서 발생할 경우에는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서 “정부가 지금이라도 중·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다시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