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성남서 승강기 추락, 작업자 2명 안타까운 사망
미흡한 현장안전 대책 및 재발 방지 장치 필요
업계 화약고인 불법하도급 공방, 유지관리업은 공동도급 인정돼
업계선 “사고 직접 원인은 작업자 과실 유력, 근로 조건은 검토해야”

성남 판교에서 지난 8일 벌어진 승강기 설치 작업자 사망 사고가 불법하도급 이슈로 비화되고 있다. 사고의 본질인 공동도급사 간 사고 과실 책임 소재와 재발 방지 대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판교 제2테크노밸리의 신축 건물 공사현장에서는 설치 작업중이던 승강기가 지하 5층까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승강장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2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제공=경기도소방재난본부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판교 제2테크노밸리의 신축 건물 공사현장에서는 설치 작업 중이던 승강기가 지하 5층까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승강장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2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제공=경기도소방재난본부

사고 현장은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은 지하 5층, 지상 12층 규모 건물로 국내 승강기 대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승강기 설치 공동도급을 수행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책임 여부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승강기 설치 전문가들은 사고 자체에는 작업자 과실이 있는 것이 명백하다면서도 공동도급사인 현대엘리베이터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긴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더해 그동안 승강기 업계 화약고였던 공동도급 문제로 전선이 확대되며 업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승강기 대기업들은 대부분 공동도급 형식으로 중소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업계 내부에선 이를 놓고 사실상 하도급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존재해 왔다.

다만 이번 사고로 인해 현대엘리베이터에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것을 놓고 문제의 본질을 빗겨간 소모적 논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건설현장에서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며 미흡한 현장 안전과 기업, 근로자의 관계가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기업에서 일어난 사고인 만큼 대중들의 관심이 높지만 정작 필요한 안전 강화와 재발 방지 대책은 논의되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유지보수는 ‘공동도급’ 인정…설치는 ‘불법 하도급’ 낙인?

이번 사고를 놓고 승강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동도급이 사실상 불법 하도급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승강기 산업은 세부적으로 ▲제조 ▲설치 ▲유지관리로 나뉘는데 소비자들이 주로 제조사인 대기업에 설치 및 유지관리 서비스를 맡기는 것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계약의 주도권을 갖고  중소기업과 공동도급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소비자(시공사 및 관리주체)는 대기업과 주로 협상하려 할뿐더러 중소기업은 특성상 계약에 매번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이런 관행이 형성된 것이다.

이같이 공동도급 관행에서 대기업이 협상 주도권을 갖고 있다보니 업계 내부에서는 ‘무늬만 공동도급’, ‘사실상 하도급’이라는 목소리가 늘 존재해 왔다.

특히 건설산업기본법의 전문공사에 해당하는 승강기설치공사업의 경우 하도급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승강기 업계의 이런 관행이 불법 하도급이라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이번 현장 사고가 공동도급 문제로 비화된 것을 놓고 업계에서 ‘터질 것이 터졌다’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는 승강기 유지관리 업계에서는 지난해 이같은 공동도급 형태가 불법 하도급이 아닌 공동도급이 맞다는 판례가 나온 바 있어 하도급 논란에 제동을 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9년 서울시를 비롯한 국내 다수 지자체들은 현대엘리베이터, TK엘리베이터(前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 오티스엘리베이터, 미쓰비시 엘리베이터 등 4개 승강기 대기업을 상대로 유지관리업 등록 취소 처분을 제기했으나 법정공방 끝에 최종적으로 불발됐다.

지자체들은 대기업의 공동수급 계약 형태가 사실상 하도급이라고 주장했으나 서울지방법원은 정해진 업무 이외의 업무를 공동수급 계약 협력업체에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등 행태가 발견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원청 업체로서의 역할과 지위를 행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지난 2019년 행정안전부는 승강기 대기업 4개사가 승강기 유지관리 업무를 수주하면서 협력업체에 작성하게 한 공동수급협정서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원청 업체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며 형사소송을 제기했으나 검찰은 최종 무혐의 판정을 내린 바도 있다.

다만 이 판례가 이번 사고 분야인 설치업이 아닌 유지관리업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타르다.

업계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와 지자체들이 승강기 대기업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했다가 최종 불발된 것은 행정안전부와 승강기안전법의 영향을 받는 유지관리업 분야였기 때문”이라며 “승강기 설치는 국토교통부와 건설산업기본법 소관이기 때문에 다른 법원 판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될까, 책임소재 조명해야

이번 사고의 조사를 맡은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14일 비상 정지장치인 조속기(가버너)의 와이어가 풀린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현장 감식결과를 잠정 발표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7시간에 걸쳐 국과수, 산업안전보건공단, 고용노동부 등과 사고 현장을 합동 감식했으며 감식 결과에 따르면 사고 당시 작업자들은 건물 12층에서 승강기 카 위에서 승강기 권상기 설치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을 지탱하고 있던 조속기의 철제 와이어가 풀리면서 작업자들이 카와 함께 추락했다는 설명이다.

조속기는 승강기가 오류나 추락 등 원인으로 과속할 경우 레일을 붙잡아 카를 정지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와이어가 풀리면서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경찰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감식결과에 따르면 작업자의 과실이 인정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설치공사업자는 “다수의 승강기 설치 전문가들이 성남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표준 공법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다만 설치공사 기한이 촉박하지 않았는지, 설치공사비는 적절했는지 등 부수적 문제는 추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고를 놓고 노동부는 지난달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발생한 매몰사고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2호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1명 이상의 사망자 발생했을 때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동일 요인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했을 때 등 안전보건법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현장에 대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강화된 양형기준으로 처벌되는 법령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