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속국 VS 탈원전 아닌 한반도 평화에 기여

동북아 슈퍼그리도 구상도 (산업부 제공)
동북아 슈퍼그리도 구상도 (산업부 제공)

슈퍼그리드(Super Grid)는 잉여전력을 상호교류하는 국가간 대용량 전력망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에너지수송용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탈원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랑스를 비롯한 이웃 국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퍼그리드하면 유럽을 떠올린다. 실제로 북유럽슈퍼그리드(Nord EU Supergrid)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10개국이 2009년 ‘북해연안국의 정책협력 협정’을 체결했고 2010년 전담 추진기구인 ‘Friends of the Supergrid'를 설립했다. 2014년 영국, 프랑스, 북유럽 간 연결이 완료됐고, 나아가 2050년까지 총 4991억달러를 투자해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까지 연결하는 초대형 에너지망 사업으로 500GW의 전력을 유럽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에너지 전환이라는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위한 협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하면서 동북아 에너지 공동체의 밑그림을 구체화했다. 러시아 역시 극동개발 모델로서 에너지 슈퍼링 구상을 내놓았다. 최근 중국과 북한 역시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몽골의 풍부한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력을 생산해 중국과 한국, 일본을 송전망으로 연결하는 ‘아시아 슈퍼그리드’를 구상했다. 손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2012년 슈퍼그리드와 관련해 면담을 가지기도 했다.

▨ 에너지 낙도(落島) 한국- 유럽과는 다른 환경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한국은 에너지수급에 있어서는 외딴섬이었다”고 말한다.

북한을 통하지 않고서는 대륙을 연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섬나라 일본과 비슷한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2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 모든 에너지원료는 바다를 통해 수입해야만 했다. 둘째는 국내에서 에너지 공급과 수요를 다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반 재화라면 잉여 생산물은 수출하고, 부족하면 수입하지만 전력은 그러하지 못했다.

에너지는 단 한순간이라도 공급이 중단돼서는 안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에너지안보라는 말이 거부감 없이 사용된다. 전기요금이라는 말 대신에 전기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국민 정서에는 국가가 어떤 경우에도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한다는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2018년 10월 31일 ‘빛가람 국제전력기술 엑스포’(BIXPO)가 열린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남북한과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의 전력망을 연계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의 상업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러시아 로세티를 비롯해 관련 기업들과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동북아 계통연계(전력망 연결) 추진을 위한 최적 방안 도출 및 전략수립’ 보고서를 검토해보면 동북아 계통연계사업에 최소 7조2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 동북아 슈퍼그리드와 탈원전

인터넷 검색창에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탈원전이 뜬다.

탈원전으로 예상되는 부족한 전력과 신재생에너지의 약점인 간헐성을 극복하려는 방안으로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논의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에너지전문가들은 북한이라는 변수 때문에 탈원전으로 슈퍼그리드를 추진하는 것은 에너지안보라는 측면에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면담 때에도 북한은 러시아가 설득할 수 있으니 가스관을 연결해 러시아 가스를 한국으로 보낼 것을 제안하기도 했기 때문에 동북아 슈퍼그리드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몽골이나 중국에서 받는 전력이 풍력, 태양력을 사용한 것인지 석탄을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만약 석탄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한국의 대기오염에는 악영향을 주게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전력공급자가 풍력, 수력 등 발전 방식을 표기해야 한다고 돼 있는 것을 참고할 수 있다.

▨ 각국의 입장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러시아이다. 수력, 석탄 및 가스 등 에너지자원이 풍부하며 시베리아 및 극동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전력망 연계사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동북 3성 지역의 전력 수급 안정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계통연계를 추진 중이며 몽골, 한국 등과의 대규모 전력망 연계에 있어 주도권을 행사하려 한다.

일본은 전력판매회사인 소프트뱅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력사업자는 소극적 입장인 반면 전력소비자는 적극적인 입장이다. 일본은 역내에서 전기요금이 가장 높다. 일본 정부가 소극적인 이유는 보수성향의 정치권, 전력기업의 시장에 대한 독과점적 영향력, 그리고 자급률 목표 설정을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안보 증대 정책 기조 결과로 분석된다. 몽골은 슈퍼그리드의 조기실현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고비사막의 풍부한 태양광 및 풍력발전자원을 역내 투자를 유치해서 개발 수출해 막대한 경제적 편익을 추구하려고 한다.

▨ 핵심은 북한 문제- 북한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동북아 슈퍼그리드에서 북한이 변수인데 이것으로 남북관계 긴장완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 등 북한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북한 변수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수급하는 문제는 14년 전부터 논의됐으며 그때마다 북한이라는 변수가 장애물이 됐으며 나름대로 이와 관련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또 한국 전체 전력량이 105GW인 반면 한전에서 북한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끌어오려는 전력량이 3GW로 한국 전체 전력량의 3% 미만이기 때문에 북한으로 인해 중단된다고 해서 에너지안보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한다. 또 국내에 발전설비 짓는 사회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북한에서 끌고 오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다른 반론도 제기된다. 북한과 함께 중국, 러시아가 북한에 동조를 하게 된다면 에너지안보 문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갑자기 감소하면 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전압을 낮춰 낮은 품질의 전력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 또한 5개의 전력망을 가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단일 전력망이기 때문에 전력의 특성상 3%도 무시할 수 없다. 즉, 정해진 수요량이 있는데 공급이 갑자기 감소하면 블랙아웃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핵심이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에너지가 북한을 통과할 때 북한은 수에즈운하처럼 통행료를 거둘 수 있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한 만큼 이 통행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이 통행료 때문에 북한이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적극 참여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또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북한에 공식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기업 활동을 했던 개성공단입주기업 관계자는 “북한이 비정상국가라는 것은 우리의 편견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철수라는 비상식적인 결정도 한국에서 한 것이며 개성공단 중단으로 입주기업에 지원된 경협보험 등 지원금은 총 5833억원에 불과했다”며 “17년간 13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관계자는 “만약 개성공단 규모가 크거나 비슷한 성격의 공단이 많이 있었다면 대마불사의 원리로 대우조선처럼 살아났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관계자는 “동북아 슈퍼그리드에서 북한을 통과하는 전력설비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고 각국의 이해가 얽혀 있고 한국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이 전력망을 중단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러시아 역시 구소련 시절은 물론 우크라이나 및 다른 국가와의 전쟁 때에도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을 고려하면 정치적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슈퍼그리드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슈퍼그리드는 금융으로 생각하면 통화스와프와 비슷하기 때문에 북한 문제는 뒤로 두고 일단 중국과 바다를 통해 슈퍼그리드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에너지 수출국이 될 것인가. 에너지 수입국이 될 것인가.

최근 송영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구을)은 트위터에서 우리나라 전력의 2%를 동북아 슈퍼그리드로 협력하려는데 이를 탈원전 에너지 속국으로 연결해 현 정부를 비판하는 일부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탈원전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견해도 제기된다. 에너지 수출국이 된다면 우려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탈원전으로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보기 때문에 에너지안보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원전으로 생산된 문제를 북한에 보낼 수 있다면 오히려 북한이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한반도 평화에 큰 기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성공과 에너지안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오히려 원전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계통연계가 필요하다면서 일방적으로 전력을 수입하는 것보다는 수입, 수출을 유연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환경, 경제, 기술적인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82차 IEC 총회에 참석, 슈인바오 중국국가전망공사 동사장을 만나 연내에 베이징에서 한-중 전력연계사업을 위한 공동 개발합의서(JDA)를 체결할 수 있도록 양 회사 간 협의를 신속히 진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82차 IEC 총회에 참석, 슈인바오 중국국가전망공사 동사장을 만나 연내에 베이징에서 한-중 전력연계사업을 위한 공동 개발합의서(JDA)를 체결할 수 있도록 양 회사 간 협의를 신속히 진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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