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는 ’올바름‘으로 상대를 압도하기 위한 논리 구축을 의미하는 ’논리 개발‘이 무엇보다 우선시된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습관이 없는 일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숨이 막히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일본의 유력 전국지인 마이니치 신문에서 서울 특파원으로 장기간 근무하면서 한국에서 깊고 넓은 지식과 인맥을 쌓은 ‘사와다 가쓰미’씨가 지은 ‘한국과 일본은 왜?’라는 책의 후기에 쓴 글이다.

사와다 가쓰미 씨가 분석한 바대로 한국의 국력은 1965년 일본의 경제원조를 받던 때와는 달리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만큼 신장하였지만, 그의 말대로 ‘옳고 그름’을 가지고 벌이는 소모적인 정쟁은 여전하다. 선진국다운 토론이나 의견 수렴 과정 그리고 절충 및 타협 등의 문화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실례로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법을 만들어 놓고도 여야불문 법을 존중하기보다는 법이 옳지 않기 때문에 법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은 2050탄소중립을 법제화 하고,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고 선언하였다. 국제적 이슈를 선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문제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정작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를 줄이는 일은 올바른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해도 국민들 다수가 동의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그저 시나리오에 그칠 뿐이다.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문제제기는 목적의 옳고 그름에 있지 않다. 시나리오의 실행비용에 대한 평가나 부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조기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늘이겠다면 서도 국민들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더니, 지금은 미미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현 딴판이다. 당장 유럽과 중국에서 전력부족이 발생하고 유류 값이 치솟고 있다. 화력과 원자력이 담당해야할 몫까지 천연가스 발전으로 메꾸려는 한국에서는 발전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야말로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쓴 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고작 6.1~7.2%로 낮춰 잡았다. 적어도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다. 발전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은 고사하고 현직 한수원 사장조차도 지난달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 정부의 원전 폐쇄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게 되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확정되지 않은 기술보다도 SMR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라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그뿐 아니다. 조환익 전임 한전 사장은 이번 달 1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정부에서는 전면적인 에너지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 하였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70%까지 높이고 원자력발전 비중을 6%까지 낮추자는 건 자충수, 나아가 자해(自害)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비록 원전을 다시 늘리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국가 에너지 포트폴리오상 원전 비중의 현상 유지가 필요하다.” 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이 갈구하는 ‘공정’이니 ‘평등’이니 하는 말도 자신들의 입장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달라는 말과 같다. 옳은 일 일지라도 방법상 공감을 얻지 못하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정부정책 수립 시 무엇보다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되, 소위 전문가들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투명하고 또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다운 면모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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