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상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조영상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몇 해 전부터 4차 산업혁명, 그리고 관련된 AI, 드론,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의 기술들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 이런 신기술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신생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이 언급되고 관련 기술과 신생 기업들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유독 우리 전력산업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기 어렵다.

전력산업 고유의 기술 특성으로 인해 정보통신 혹은 서비스 산업에 비해 혁신의 속도가 늦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극히 작은 부분의 실패가 전체 시스템의 치명적 실패와 붕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산업적 파급효과 등을 고려할 때 발전 및 계통 운영 등의 분야에서 신기술의 적용 및 활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전력산업의 늦은 변화가 단순히 전력산업의 기술적 특성에 기반한 것만은 아닌 구조적, 제도적 요인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전력 생산 및 판매 가치 사슬의 대부분을 한전과 발전공기업들이 촘촘히 담당하고 있는 현재의 전력산업 구조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전력산업에서의 창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저조한 실정이며, 새롭게 등록된 기업들 역시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금이나 보조금과 관련된 설비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많은 기술 및 서비스들이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경쟁의 정도가 타산업에 비해 낮은 실정이며, 때문에 이들 기업에서도 기술혁신의 유인이 낮은 상황이다. 현재의 공고한 경직된 산업구조와 제한된 데이터 개방에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이를 적용할 새로운 분야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다음으로 정부와 민간 사이의 정보비대칭성이 사라지고 민간의 역할과 비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공기업 체제 중심으로 전력시장을 접근하는 것 역시 전력산업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각종 계수와 보정, 원칙없는 요금 조정 등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의 수익이 조정되는 정책적 개입이 전력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면서 새로운 기회의 모색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별 공기업들은 핵심 역량에 기반한 신규 사업 개발보다는 정부 정책 지원을 위한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투자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 역시 제한된 자원을 고려할 때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다양한 시도가 감소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 전력산업은 우수한 새로운 인력의 유입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하고 있다. 대학의 경우 90년대 후반 학부제를 거치면서 전기공학은 전자공학 관련 전공으로 흡수되거나 비중이 축소되었으며, 관련 학과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에도 예전에 비해 우수한 학생의 지원이 감소하고 있다. 관련 학문을 전공한 우수한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전력 공기업으로의 진출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공기업을 제외한 민간 기업들에는 우수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다. 결국 우리의 전력산업은 새로운 기회 창출을 노리는 신규 인력의 진입을 통한 수평적 확장보다는 기존 인력의 수직적 이동에 의한 현 상황의 고착이 심화되고 있다.

전력산업에 진출한 인력의 경우, 조직과 개인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자율적인 여건이 제공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침이나 방향이 ‘내려오고’ 난 이후에야 이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하였다. 또한 제한된 범위에서 역량을 발휘하더라도 개인의 성과에 따라 경제적, 제도적 보상 역시 다른 산업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우수한 인력을 흡수할만한 경제적, 제도적, 심리적 보상 및 유인이 현재의 전력 생태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은 데이터와 혁신, 그리고 융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의 수급과 개방적 환경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전력산업은 지속적인 혁신을 위한 우수한 인력을 유인하는 환경과 제도, 생태계, 시장 구조 등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과거의 영광과 자긍심, 그리고 책임감만으로는 다양성, 개방, 소통, 공정한 보상 등을 중시하는 MZ세대를 붙잡을 수 없으며, 현재의 시스템하에서 전력산업의 유니콘 기업은 소원할 뿐이다.

프로필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원 부원장 ▲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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