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양진영 기자] 라틴어 '마니페스투스(manifestus)'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증거’ 또는 ‘증거물’이 된다.

마니페스투스는 이탈리아어에 편입되며 ‘마니페스또(manifesto)’로 바뀌었는데 ‘과거 행적을 설명하고, 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이라는 의미다.

마니페스또는 1644년 영어에 포함된 후 우리나라에 '매니페스토'로 전파됐다. 2000년에 전개됐던 낙천 · 낙선운동을 거쳐 2006년 5월 치러진 4대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이 공약의 구체성을 강조하며 매니페스토는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주기적으로 공약이행 상황을 평가·발표하고 있다. 그 점수는 말 그대로 ‘사바사(사람by사람)’다. 스스로 내건 공약이지만 누군가는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이는 절반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국민이 과연 매니페스토에 관심이 있을까 싶다.

선거 때면 후보자들이 휘황찬란한 공약들을 쏟아내지만 과거 재임 당시의 공약이행률을 따지고 표를 던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느 전 대통령이 ‘반값등록금’, ‘누리과정 지원’ 등 공격적인 공약을 들고 나왔다가 당선 후 내던질 수 있었던 것도 국민의 무관심을 예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눈을 돌려 산업계를 보면, 최근 기업들도 ‘ESG’라는 ‘공약’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요청하면 십중팔구는 “아직 구체적인 건...”이라며 말꼬리를 흐리거나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외부 행사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해달라는 요청도 고사한다.

ESG가 최근 화두인 만큼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일단 선언부터 했거나, 관련 내용을 외부에 발표해 공식화했다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흐름을 따라야 하는 기업의 부담도 공감이 간다. 그러나 ‘선언’까지 하는 마당에 제대로 된 목표도 없고, 발표할 용기도 없다는 건 ‘엄목포작(掩目捕雀)’이다.

모두가 기업의 실천 여부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중은 우매하다’던 플라톤의 말이 틀렸음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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