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소비와 탄소중립 실현 위해 요금 정상화 필요
2분기 연속 전기요금 반영 실패…4분기는 더 힘들 듯
뉴욕증시 상장한 한전 주주가치 훼손 소송 휘말릴 수도
정치권 눈치 안 보는 독립된 규제기관 필요

[전기신문 유희덕 기자]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가운데 정부가 물가인상을 우려해 연료비의 변동에 따른 전기요금 조정을 미루면서, 중장기적으로 요금조정에 대한 부담만 커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연료비 변동비용을 소매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했다.

정부와 한전은 지난해 말 연료가격을 소매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도를 도입했다. 소비자들이 현명하게 전기를 소비할 수 있게 시그널을 주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한 만큼 이를 가격에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연료비조정단가는 국제유가와 연동하는 유연탄, LNG, BC유의 3개월 무역통계가격 평균을 산정해 1년 평균 대비 등락을 전기요금에 반영한다. 최근 3개월 평균으로 볼 때 국제유가가 상승한 만큼 kWh당 3원의 요금을 인상해야 했지만, 한전은 요금 조정을 미뤘다.

연료비 연동제도 도입은 특히 그동안 전기요금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면서 원가를 제때 반영하지 못한 폐해를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허무하게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요금조정을 통해 인상이 예상됐지만 2분기 연속 사실상 요금 조정이 동결되면서 한전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연료비 조정을 발표한 21일 7% 가까이 하락한 한전 주가는 상승 모멘텀을 잃어버린 것처럼 움직였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한전의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정부가 지금처럼 요금규제를 강화할 경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적정원가와 적정투자보수 회수가 어렵게 요금 규제를 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에 따라 외국인 주주로부터 ISD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료비의 변동에 따라 자율적으로 요금을 변동되도록 한 제도를 만들어 놓고 요금을 인하할 때는 즉시 반영했다가 인상요인이 발생하자 조정을 미루는 것은 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 들어 주식을 하는 국민들이 많아지면서 각 기업이 미래성장을 위한 물적 분할 등이 주주가치 훼손 소송에 휘말리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한전이 요금을 동결했는데, 대선을 코앞에 둔 4분기는 요금조정이 더욱 힘들어지는 만큼 이번 결정은 향후 요금 조정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을 보면 탄소중립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송재도 전남대 교수는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전기 등 탄소를 배출하는 산출물들에 대한 가격인상은 시장원리 하에서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 저탄소 경제로의 이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2015년 kWh당 112원이었던 평균 전기요금이 2020년에는 kWh당 110원으로 하락했는데 탄소중립 선언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의심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전력노조도 이번 정권 들어 정부 정책에 대한 첫 반대 서명을 발표하며 정부가 탄소중립 실현의 의지가 있는지 물었다.

전력노조는 “가정용 요금은 37개 OECD 회원국 중에서 네 번째로 저렴할 정도로 낮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데, 물가안정을 이유로 연동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탄소중립은 그만큼 멀어지고, 향후 국민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력 전문가들도 “정부가 전기요금인상을 억제하면 시장의 왜곡은 물론 에너지효율 무력화, 한전재무구조 악화 등의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전기요금 결정이 여야를 떠나 정치적 결정의 영역이 된 만큼 미국 각주의 PUC(Public Utility Commission), 호주의 ACC, 영국의 OFGEM 등과 같은 독립규제위원회를 설립해 공공요금을 정치적 결정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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