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평 에너지인프라 자산운용(주) 부사장
이호평 에너지인프라 자산운용(주) 부사장

‘‘경제성장을 이룬 36개 민주주의 국가 중 교육의 질 33위, 아동사망률 33위. 식수청결도 31위’ 이는 어느 나라일까? 바로 미국이다. 경영전략의 대가 마이클 포터 교수의 최근 저서 ‘권력의 배신 : 원제 The Politics Industry'의 내용이다. 그는 산업공학적 방법론으로 그 원인을 찾았다. ‘정치’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 해결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정책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정치이며, 정치는 지나치게 우 또는 좌를 지향해서는 안 되고 올바른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는 양식화된 이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대중의 의견을 쫓아가서는 안 되고 앞서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 리더십이다. 모든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어떤 그룹이나 계층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 못할 때 좋은 정책이 만들어진다”고 충고한다. 그는 이 책의 유일한 목적이 바로 ‘정치 혁신’이라며 “이 책은 나의 스무번째 책이며, 내가 쓴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 절박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 이제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책은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책이나 방침을 말하고 국가의 목적은 당연히 국민의 안전과 복지 실현이다. 따라서 정치는 국가와 국민에 기여해야 한다. 여기서 국민은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는 이념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듯하고 행정은 의회에 종속돼 버린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행정을 맡은 공무원은 물론 과학적 근거에 의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아이디어가 제대로 정책에 반영될 수도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 이념은 손쉽고 명확한 윤리로서 모든 용도에 적절한 분석 도구가 되며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확신에 찬 답을 제시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은 새로운 이슈에 대해 근본적 해결보다는 오히려 그로 인한 사회적 균열이 초래하는 불안과 분노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불확실성 시대에서의 정치는 더 이상 ‘이념적 프레임’에 경직되거나 ‘포퓰리즘’에 기대서는 안 된다. 시대의 트렌드와 그 엄중함을 명확히 인식하고 미래의 비전에 맞는 큰 틀에서의 방향과 규칙을 정책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은 국가 총역량이 동원된 수준의 종합적 정책(솔루션)이 필요하다. 정책은 분석과 증거를 바탕으로한 실용주의의 차가운 머리로 만들어져야한다. 현재와 미래를 함께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불안과 분노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바꿔줘야 한다.

‘위기는 기회’이다. 지금까지 자동차/조선/반도체가 우리 경제를 살려왔다. 하지만 앞으로의 지속적 번영을 위해서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미래의 먹거리를 찾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과 ‘정치‘ 그리고 ‘이념‘이 조화롭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 시대의 엄중한 과제이다. ‘2050 탄소중립’이 국가의 명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분야는 물론이고 운송/건설/제조/소비 등 정책 전반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2050 탄소중립’이 국가 장기비전 및 성장전략과 정교하게 연계돼 있는가?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석탄을 LNG로 대체하는 것이 탈탄소와 충돌되지는 않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린수소의 생산에 기존의 원자력발전을 이용할 수는 없는가?(예시로, 말 많은 신한울 3,4호기를 수소생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 그리고 만약 그 ‘2050’의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의 국가적 대비책(contingency plan)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탄소중립을 위한 여러 추가 비용에 대해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는 어떻게 구할 것인가? 등 이를 위해서는 늦어도 2030년까지는 구체적인 정책 실행방안은 물론 관련 기술의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이제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

최근 개봉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설경구 분)은 제자인 창대에게 조선 말기의 시대적 비극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성리학을 위한 백성(나라)이냐? 백성(나라)를 위한 성리학이냐”라고. 이는 200여년 전 흑산의 정약전이 이 시대 우리를 향한 따끔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념과 노선의 차이, 어느 하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의 국민은 물론 미래의 국민이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그 길을 함께 만들어가는 노력이 절실한 이 시점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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