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자가 있는데 자꾸 이러면 안되는데. 너만 보면 난 자꾸 마음이 흔들려 ’

박진영의 ‘난 여자가 있는데’라는 곡이다. 자꾸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해 보지만 새로운 사랑 앞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정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미혼 남녀가 연애하다가 이런 일이 있다면 헤어져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배우자와 가정이 있다면, 특히 자녀가 있다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혼 사유로 가장 흔한 사유 중 하나가 배우자의 외도이다. 그 외도가 진지하고 오랜 사랑이든, 스쳐 지나가는 호기심이든 혼인 기간 중 흔들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도를 한 당사자는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는 이른바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대법원은 50년간 유지된 ‘유책주의’를 ‘파탄주의’로 즉,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이 된 경우에는 유책 배우자에게도 이혼 청구권을 허용하도록 입장을 변경할 것인가를 두고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대법관 13명 중 7명이 현재로서는 파탄에 책임이 없는 상대방이 이혼으로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심히 가혹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경우 이를 보호할만한 법적·제도적 조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유책주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파탄주의 도입은 무산되었다.

다만 판례는 종래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라도 상대방 또한 혼인 유지의 의사없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만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경우 이혼을 허용해주던 것에서 나아가 유책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이혼을 허용해주는 등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허용되는 예외를 좀 더 넓혔다.

유명 여배우인 김민희와 불륜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부인을 상대로 한 이혼 청구도 유책주의를 근거로 결국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런 홍상수 감독에게도 이제 이혼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일까?

지난 10월 말 대법원이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관한 실증적 연구’ 용역 사업을 발주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가족과 혼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이혼율이 급증하고 이혼에 대한 국민의 인식 또한 크게 변화하고 있는 현 사회에서 ‘파탄주의’의 도입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법원의 기각 판결에도 유책배우자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이미 파탄된 가정을 위한 실질적이고 종국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여성들이 많고, 실제 내가 상담하거나 수행 중인 사건의 의뢰인 중에도 이혼하면 겨우 재산이라고 하나 있는 거주 중인 집을 팔아 대출금 갚고 남은 절반 정도를 재산분할로 나누어 받는다 하여도 그 돈으로는 현재 거주하는 환경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살면서, 양육비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 이혼 후의 생활과 자녀양육에서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례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탄주의를 취하는 나라에서도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더라도 미성년 자녀의 이익을 위하여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꼭 필요한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이혼을 원치 않는 상대방에게 심히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등에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등 파탄주의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혼을 허용하는 경우에도 이혼 후 유책배우자에게 상대방에 대한 부양적 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도 파탄주의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유책배우자의 상대방과 자녀를 보호할 입법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금지된 사랑은 더 매혹적일 수 있다. 사람이 원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에 더 집착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금지된 사랑의 치명적인 달콤함 뒤에는 책임과 혹독한 댓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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