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단 건의와 달리 전국, 지역 공론화 동시에 진행
월성 원전 맥스터 증설 외에 어떤 일 했나!
기장군 지역실행기구 구성했지만, 김소영 위원장 방문조차 안 해 결국 무산

월성원전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재검토위원회는 월성원전에 대해서만 지역공론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맥스터를 추가 증설할 수 있었다.
월성원전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재검토위원회는 월성원전에 대해서만 지역공론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맥스터를 추가 증설할 수 있었다.

[전기신문 윤재현 기자] 국내 원전 해체산업의 ‘마중물’인 고리1호기 해체 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지난 9월 개최된 제147차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출한 고리원전 1호기 해체 계획과 관련한 적절성 심사가 무기한 연기됐는데 사용후핵연료 반출 방법 및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연기 사유다.

한수원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진행한 ‘고리1호기 최종해체계획서 초안’ 공청회는 사실상 사용후핵연료 공청회로 변질됐다는 후문이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에 책임감 있는 답변이 가능한 정부 혹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에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주민들의 질문과 항의에 곤욕을 치렀다.

◆재검토위, 판 잘못짰나?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은 정부 사무이기 때문에 원전해체 사업자인 한수원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와 원전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검토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지만 고리원전 인근 기장군 장안읍의 분위기는 남다르다.

재검토위에서 경주 월성원전에 대해서만 임시저장시설 증설을 추진키로 하고 기장군의 고리원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없이 해산했다. 그 결과 고리1호기 해체 계획 부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기장군은 지난해 5월 우여곡절 끝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립을 위한 지역실행기구’ 위원을 위촉하고 재검토위에 공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차례 MOU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소영 재검토위 위원장은 위원장 취임 이후 공식적으로 기장군을 방문하지 않았다.

위원으로 선정됐던 주민 김모씨는 지역실행기구에 참여해 지역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재검토위 때문에 출범하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해관계자 참여와 관련해 ‘왔다, 갔다’ 하는 정부의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6년 7월 수립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국민, 원전소재 지역주민, 시민사회 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며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준비단(이하 준비단)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정부는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던 준비단과 달리 재검토위에서는 중립적 인사로 구성한다며 이해관계자를 제외했다.

한 원전 전문가는 “이해관계자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고 원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정부의 의도대로 이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며 “실제로 박근혜 정부 시절 공론화위와 비교할 때 위원들의 회의 참석률이 낮았고 사명감도 부족해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7월 사퇴한 정정화 당시 재검토위 위원장 역시 재검토위의 출범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판을 잘못 짰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우왕좌왕

산업통상자원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반박했다. 정부에 따르면 원전지역(5), 환경단체(3), 원자력계(3), 갈등관리전문가(3) 로 구성된 준비단을 통해 재검토 의제·방법 등에 대해 논의를 거쳤으며, 환경단체 추천위원 2명이 회의 직전 참여 의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준비단에 참가했던 이헌석 정의당 기후정의일자리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당시에는 에너지정의연대 대표)의 말은 다르다.

준비단에서 환경단체와 원자력계는 재검토위에 참여하기로 합의가 됐지만 정부 측 추천 인사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합의가 된 사안도 있었고 합의가 안 된 사안은 끝까지 토론하려고 했으나 정부에서는 재검토위가 출범해야 해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논의를 중단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검토위는 시간이 없었다는 정부 측 해명과 달리 준비단이 2018년 11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정책건의서’를 제출한 지 6개월이 지난 2019년 5월에야 출범했다.

이헌석 위원장은 “시간이 없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고, 당시에는 이해관계자를 제외한다는 것을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명했다”고 회상했다.

지역의 한 원전 전문가는 “환경운동 시민단체가 한 두 곳이 아닌데 환경단체 추천위원 2명이 철회했다면 다른 위원들을 물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해명은 신뢰할 수 없다. 특히 원전 지역주민을 제외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준비단에서는 공론화 순서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원칙과 원전부지 외 관리시설 확보방안에 대해 전국공론화를 먼저 시작하고, 그다음 원전 부지 내 관리방안에 대한 지역공론화 순서로 진행할 것을 건의했으나 일주일 간격으로 거의 동시에 전국공론화와 경주 월성원전 공론화가 시작됐다.

기장, 울진 등 다른 지역은 공론화 자체도 하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전국공론화와 지역공론화는 의제부터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전국공론화는 “임시저장시설, 중간저장시설 건립 여부 및 사용후핵연료 이송 및 보관 등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고 지역공론화는 전국공론화에서 결정된 사안을 우리 지역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중첩해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5월 재검토위 출범 당시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준비단의 정책건의서를 최대한 존중해 재검토위원회 구성, 관련 고시 제정 등 후속 업무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받는다.

재검토위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원칙 ▲정책결정체계 ▲영구처분시설 및 중간저장시설 확보 ▲관리시설 부지 선정 절차 ▲관리시설지역 지원원칙 및 방식 ▲임시저장시설 확충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및 포화 전망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개발 등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사항 등 8개의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하며 지난 4월 해산했다.

◆재검토위, 도대체 뭘 했나? 부실운영 지적도

그중 핵심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었다.

이 위원장은 “특별법 자체는 필요하지만, 문제는 내용이다. 공론화 내용을 특별법에 담아야 하지만 엉터리 공론화 내용을 바탕으로 법을 만들 수는 없다”며 “사용후핵연료 반출 등의 문제는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원전 전문가는 “재검토위의 권고안 중 일부는 엔지니어들끼리 의견 교환하는 수준인데 이것을 공론화 권고안이라고 제출하는 것은 그냥 가짓수 늘리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고리원전 인근의 한 주민은 “박근혜 정부 당시 공론화위원회는 구체적인 로드맵이라도 제시했는데 재검토위는 월성 맥스터 증설 외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비난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는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공론화를 할 의지가 없었다. 재검토위가 종료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며 “정부의 의도는 임시저장시설을 증설해 기존 원전 운영에 문제 될 것이 없으면 자기 할 일은 다했다고 보는 거였다”고 비판했다.

한 원전 전문가는 “현재의 사용후핵연료는 사람으로부터 영구히 격리해야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정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제3의 방법인 ‘Wait and See’도 공론화의 한 주제가 될 수 있다”며 “상시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위원회를 두고 안전하게 관리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론화를 하는 이유는 주민들의 안전과 관련된 사안이며 우리 세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후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특별법 운운하며 국회로 책임을 넘기는 것은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재검토위는 위원수당으로 대략 2억원, 위원회 운영에 50억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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