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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인사이트] 누구를 위한「중대재해법」인가…
최승동 한국전기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작성 : 2021년 09월 10일(금) 14:09    게시 : 2021년 09월 10일(금) 14:10
최승동 한국전기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사람 목숨과 돈을 저울질하던 ‘야만의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 노동자를 도구 취급하던 과거 이야기다. 지금은 아니다. 어느 곳보다 노동자의 건강, 안전, 행복을 중시해야하는 곳이 기업이다. 인본주의 관점에선 경영자도 노동자도 평등한 인간이기 때문이고, 자본주의 관점에선 세 요소가 생산성 지표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안전 조치 등을 소홀히 해 노동자의 건강, 안전, 행복을 해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법이다. 공포(公布)는 지난 1월 26일 됐고, 시행은 2022년 1월 27일부터다. 단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의 유예 기간을 둬 2024년부터 시행된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중대 산업 재해에 해당하는 경우는 3가지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산업 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때 △동일한 원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때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 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때다.

내용만 보면 노동계는 적극 찬성, 경영계는 결사반대 구도가 그려진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중대재해법은 어느 쪽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고 있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한 목소리로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공개한 시행령 제정안이 문제다.

경영계는 제정안의 모호성을 지적한다. 제정안에 책임 대상으로 규정된 ‘경영 책임자 등’은 정확히 어떤 직책을 뜻하며, 일부 조문에 등장하는 ‘적절한’, ‘필요한’, ‘충분하게’ 등의 기준은 무엇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1년 이상 형사 처벌이 가능한 만큼 사법기관이 임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경영계 주장이다.

해외 사례에 바탕해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캐나다판 중대재해법인 ‘웨스트레이법’은 1992년 현지 광부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웨스트레이 광산 폭발 사고를 계기로 2004년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검사는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연방 정부, 주 정부, 기업, 비영리 단체, 비정부 기구 등을 폭넓게 기소할 수 있다. 그러나 2004~2014년 법 위반으로 기소된 10건의 사례 가운데 유죄는 단 4건에 불과했다.

한편, 노동계는 제정안을 ‘살인 면죄부’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하고 있다. 2인 1조 작업 및 신호수 투입 등 그간 노동계가 요구해 온 의무 조항이 빠졌고, 과로사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뇌·심혈관 질환이 법 적용 대상에서 누락됐다는 이유다. 안전·보건 관리의 외주화 가능성을 열어둔 점도 비판 이유의 하나다.

‘위험의 외주화’ 비판은 있을지언정, 노동자를 일부러 위험으로 밀어넣는 기업은 없다. 과거에는 돈으로 조용히 해결이 가능했을지 모르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보는 눈도 많고, 사고 발생 시 ‘산재 기업’이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한다. 약간의 금전적 이익 때문에 기업을 결딴 낼 리스크를 안고 가는 건 무능한 경영자다.

한국 사회에서 경영자가 중대재해법 보완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반(反)노동자 기업으로 오해받을 받을 위험도 위험이지만, “기업은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시한다”는 통념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노동자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가 확산되어도 ‘기업=돈’이란 대중 인식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경영계가 눈치 보는 사이 영세 기업의 근심은 커지고 있다. 특히 대다수가 연 매출 10억 원 미만 소규모 업체로 구성된 전기공사업계는 중대재해법이 도미노 폐업의 단초로 작용할까 걱정하고 있다.

한국전기공사협회에 따르면 전기공사기업 1만 8,000여 곳 가운데 연 매출이 10억 원 미만인 기업은 전체의 69.21%(1만 2227곳)에 달한다.

해외의 경우, 실제 파산 사례도 있다. 2011년 영국 주택 개발 기업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 홀딩스(CGH)는 20대 노동자가 붕괴 사고로 사망한 뒤 안전 소홀 혐의가 인정돼 38만 5000만 파운드(약 6억 132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회사 매출의 25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CGH는 재정 상태를 고려해 10년 분납이 허용됐지만 끝내 파산했다.

전기 공사는 작업 특성상 인명 사고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전기’라는 작업 대상 자체가 위험하다. 즉, 중대재해법으로 개인 또는 법인을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다.

게다가 중대재해법은 산안법과 많은 내용이 중복 적용되거나 상충되는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례로, 현행 산안법도 사업주, 법인을 처벌 대상으로 하며 위반 시 최대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중대재해법의 취지는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법의 목적과 취지가 모든 논란을 정당화할 순 없다.

정부가 중대재해법의 목적과 파급효과를 균형감 있게 고민하고,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할 때다.



글_최승동 한국전기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전기공사 현장의 길라잡이-전기공사시공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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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동 한국전기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키워드 : 에릭인사이트 | 중대재해법 | 한국전기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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