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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탁 교수의 월요객석) 탄소중립의 ‘브뤼메르 18일’
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작성 : 2021년 07월 28일(수) 14:09    게시 : 2021년 07월 29일(목) 08:35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프랑스혁명을 분석한 마르크스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숙부인 나폴레옹이 1799년 ‘브뤼메르(안개가 짙은 달로서 10월~11월에 걸쳐 있다) 18일’에 일으킨 쿠데타와 유사하게 독재권력을 구축한 반복 사건을 꼬집어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세계 각국 아니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기에 혁신적 가치와 역사적 책임을 앞세우지만 결국에는 가치의 퇴색과 책임의 부재 속에서 과거의 실정을 답습하는 결과들 말이다. 시야를 좁혀 정치의 하위 단위인 정부계획에도 이런 반복성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계획이 그에 해당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감축 계획은 크게 두 가지,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발표된 ‘2020년 중기감축계획’과 NDC 제출과 관련해 발표된 ‘2030년 NDC 감축계획’이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비교한 중기감축 계획과 실현수치간의 큰 격차라는 부끄러운 해프닝을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2030년 NDC 감축 목표 역시 논란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도전적인 목표가 설정되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탄소중립과 이와 연계된 NDC 상향문제가 논의 중이다. 불확실하지만 일부 들리는 내용을 보면 다소 걱정되는 측면이 있다.

첫째, 지난 계획은 에너지문제에서 단기에 속하는 십 년 정도의 감축 목표를 너무 과감하게 설정했다. 오랜기간 감소추세였던 OECD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 추세였다. 이런 추세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증가세 둔화와 감소추세로의 안정적 전환에 주력하고 이후에 감축의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충격을 줄이는 길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높고 에너지다소비업 역시 설비효율이 수준급이기 때문에 십 년 정도의 단기간 내의 감축 여력은 제한적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가동률 저하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배출량 감축을 위해 코로나19가 지속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후장대형 설비산업의 구조나 공정 전환은 십 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리는 과제다.

셋째, 산업부문보다는 덜 하지만 발전부문의 제약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전력요금의 사회적 수용성은 별도로 하더라도 안정적인 전력수급과 신뢰도 기준의 계통운영상 석탄발전의 급격한 축소와 퇴출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이에 따른 비용보상과 일자리 전환문제도 있다.

세계 각국에 탄소중립을 강권한 IEA의 보고서(Net Zero by 2050)도 탄소중립 경로는 ‘one-size-fit-all’이 아니라 각국의 상황을 고려할 것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탄소중립 달성에 중요한 상당수의 신기술도 2030년 이후에 구현될 것으로 보고 있다. OECD국가이면서 특이한 ‘우리의 제약조건’ 그리고 ‘2030년 이후의 새로운 기술’은 우리나라 감축 계획의 단계 구분과 속도 설정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혹시 이러한 현실의 고려를 탄소중립에 대한 반대와 저항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도 탄소중립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과거 계획의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고, 현실 제약조건 속에서 우리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구현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또한 높은 감축 목표와 당위적 경로를 주장하면 지구환경과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책임한 자세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온실가스 감축이란 이름 하에 진행되는 미중간의 치열한 패권싸움과 탄소국경조정이란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추상적인 코스모폴리탄니즘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탄소중립과 NDC 상향안은 아직 논의 중이고 구체안은 ‘안개의 달’에 해당하는 10~11월 사이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중기계획이 저탄소 녹색성장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었다면, 탄소중립 특히 2030년 NDC 무리한 상향은 국제협약에 따른 공약이라는 점에서 자칫 한국경제를 짙은 안개 속으로 몰고가거나 아니면 국제적 식언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전에는 ‘희극’이었지만 이번에는 ‘비극’으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프로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전력수급계획 위원 및 에너지기본계획 전력분과장

경제발전학회 회장, 전력거래소 이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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