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문명을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로 설명하였다. 인류의 문명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도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요약할 수 있다.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으나 경공업을 중심으로 산업화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가부도 위기에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국내 기업신용도가 폭락하는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지금은 GDP 기준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대국 반열에 들어섰다. 기후변화라는 것을 6·25 전쟁이나 외환위기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최근 국제사회의 대응과 우리나라 산업의 특징을 보면 상당한 위기감을 갖고 이에 대처해야 할 상황이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지구 평균온도상승을 2℃ 이하로 억제하는 것으로 합의될 때만 하더라도 그저 온실가스 배출감축이 좀 더 강조되겠구나하는 정도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2018년 IPCC에서 ‘1.5℃ 지구온난화’라는 특별보고서를 발표하여 1.5℃ 이내로 온도상승을 억제해야 함이 강조된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일본, 미국, 캐나다 등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을 선언하였고, 중국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하였다. 우리나라도 2020년 10월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39.4% 감소시켜야 한다(균등감축 가정 시). 작년 말에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보다 훨씬 강화된 제10차 전력수급계획과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이 곧 선보이게 될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배출감축비율의 숫자만으로도 급진적이지만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이러한 목표가 얼마나 도전적인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력산업의 경우, 2016년 발전량 중 7%를 차지한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50년까지 대략 8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한편, 제조업의 경우 국가 GDP에서의 비중이 29.2%로 중국보다 높으며, 수출에서의 비중은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2018년 기준). 제조업 중에서도 특히, 수출을 주도하고 국가 중추산업으로 불리는 산업들은 주로 탄소다배출업종인 철강, 석유화학, 정유, 시멘트산업이다. 이들 중공업이 탄소중립 과정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90%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감축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혹독한 체질전환을 수반하거나 혹은 아예 산업을 전환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각에서는 지금의 기후대응을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 한다거나 일시적인 유행 정도로 치부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려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기후대응은 일회적이거나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산업구조와 인프라의 전면적인 변화를 전제하며, 이러한 전환을 일시적으로 진행할 요량으로 추진하는 나라는 없다.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저탄소화 구조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것이 실효성을 갖고 자국의 경제에도 해가 되지 않도록 탄소누출 현상에 대한 대책마련에 한창이다. EU나 미국에서 준비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아직 제도가 확정되지 않아 주시하면서 대응해야겠으나 상황에 따라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시장에서 발전부문에 대한 100% 유상할당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 또, 우리나라의 대EU 수출에서 철강은 수출액의 10% 이상, 석유화학은 5% 이상을 탄소국경세로 지불해야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하여 27개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기후변화 리스크와 ESG를 투자결정의 핵심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자발적이며 선도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하는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투자자들이나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국제사회의 규준(norm)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수시장만으로 한계가 명확하며 교역을 통해 성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탄소가격이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러한 강점을 잘 살린다면 기후변화는 기회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기후대응은 우리나라 산업계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도전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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