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위 주제는 필자가 지난 2월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의 제목이다. 탄소중립을 논하면서 왜 경제성장이냐고 질문할 수 있겠지만 이는 경제학 특히 경제성장론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다. 탄소중립은 넷제로(net zero)를 말한다. 문자 그대로 온실가스 배출증가율이 제로가 돼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어느 경제변수의 증가율이 제로가 되는 상태를 정상상태(steady-state)라고 한다. 문제는 여러 경제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정상상태에 이르게 될 때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율은 이미 제로증가율에 접어들었다. 경제성장률도 거의 제로증가율에 근접하였다. 이처럼 주요한 경제변수가 동시에 제로증가율을 보일 때에는 ‘정상상태 균형’이라고 하는데 이 균형이라는 단어가 어감이 좋아서 그렇지 사실은 그 상태에 고착화된다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그리 유쾌한 상태는 아니다. 특정 수준의 정상상태에 고착화될 때에 자본스톡이 충분히 높은 상태라면 그 경제체제는 계속 부유한 상태에 머물 수 있다. 만일 정상상태 균형에 도달하는 시기가 자본스톡이 아직 미미한 상태라면 저성장 저개발의 덫에 영원히 걸릴 수 있다. 말이 균형이지 한번 그 덫에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시점에 축적되는 자본스톡의 규모가 중요하다.

그럼 이 대목에서 ‘자본스톡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도 던져봄직하다. 자본스톡은 나라의 축적된 자본규모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한국과 주요 경제대국의 온실가스 배출규모를 논의할 때에 일인당 GDP와 자주 비교한다. GDP는 일 년간 벌어들인 소득이고 이는 플로우(flow) 변수다. 탄소중립을 이야기할 때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경제지표는 플로우 변수가 아니고 자본과 같은 스톡 변수가 돼야 한다. 왜냐하면 탄소중립은 한 나라의 경제체질을 전환하는 것이며 앞서 본 것처럼 경제성장률과도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린뉴딜 정책이나 에너지전환 정책과는 그러한 점에서 결의 차원이 다른 정책이 탄소중립인 것이다. 에너지전환 정책이 가정의 식단을 친환경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라면 탄소중립은 아예 유기농으로 전체 식단을 바꾸고 쓰레기 배출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건 플로우 변수인 가계소득이 높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가계에서 축적된 자본스톡이 넉넉해야 꾸릴 수 있다. 왜냐하면 소득은 어느 해 높을 수도 있고 어느 해 낮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등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자본스톡 규모는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지속가능한 환경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노르웨이의 경우 북해의 유전을 개발할 때에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낭비하지 않고 수력발전을 확충하는 데 투자했다. 그 결과 오늘날 노르웨이 전력생산의 거의 100%가 수력발전에서 이루어지고 때로는 전기가 남아돌아 EU 전력시장에 내다팔기도 한다. 또한 그만큼의 여유를 가짐으로써 북해 유전 수입이 새로운 자본축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처럼 석유 자원보유국은 아니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적 자원과 기술력을 갖고 있기에 이를 활용한 자본축적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한국판 뉴딜 정책의 양대 축인 그린뉴딜과 디지털뉴딜을 잘 연계하면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변동성이 높으며 간헐적인 공급원인 재생에너지가 큰 폭으로 증가함에 따라 수요자원 관리나 ESS 보급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는데 이는 디지털 뉴딜의 영역에 해당된다. P2P를 통한 전력시장의 분권화와 전력선도 및 선물계약은 제3기에 접어든 배출권거래제와 함께 국내에 상품시장을 육성하는 계기로 발전시켜야 한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의 공통점이 매우 발달한 금융시장과 상품시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역시 작금에 추진되는 탄소중립 정책을 통해 이 분야의 국제경쟁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 감축만 단편적으로 강조하는 탄소중립 정책으로는 결코 성장자본을 축적할 수 없고 그 비용은 우리의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술과 우리의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탄소중립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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