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DR, 재생E 확대 대응 위한 속응성 자원
주파수 하락에 따른 발전기 연쇄 정지 막고자 도입
59.85Hz 이하면 즉시 전력 중단...주파수 변화 대응
해외서도 예비력시장서 큰 역할...미국 2~3GW 규모
정산금 지급 방식 두고 정부-사업자 갈등도
30일 전기위원회 승인 후 내달부터 긴급제도로 시작

#지난 3월 28일 오후 2시쯤. 석탄발전소 신보령 1호기가 불시 정지하자 예상치 못하게 주파수가 훨씬 더 하락해 최저 주파수 59.67Hz를 기록했다. 전력망 주파수가 59.8Hz 이하로 내려가면 태양광인버터(전력변환기)가 자동으로 정지하도록 주파수가 설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파수가 떨어지면 전력 품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정전이 파급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45만kW 태양광 설비에 연결된 8만개가 넘는 인버터 설정을 다시 바꿔야 한다.

정부는 이 같은 주파수 하락 문제에 대응하고자 패스트(Fast) DR를 추진하기로 했다. 인버터 설정을 바꾸는 것보다 언젠가 도입할 제도를 조금 빠르게 적용하면 된다는 판단에서다.

패스트 DR은 수요와 공급이 불안정해 급작스럽게 전력계통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비전력 차단 등으로 이를 해결하는 수요반응(DR) 자원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성에 대응하는 속응성(빠른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상치 못한 발전기 정지 등의 주파수 하락 대응을 위해 패스트 DR을 추진하기로 했다.

◆59.85Hz 이하면 즉시 감축...정산금은 일반 DR 수준

전력거래소는 지난달 23일 계통주파수가 59.85Hz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즉시 부하를 감축하는 ‘패스트 DR 제도도입 기본계획(안)’을 사업자들에게 공개했다. 전력 계통주파수가 급작스럽게 59.85Hz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와 계약을 맺은 공장, 사업장 등은 즉시 10분간 부하를 감축해 전력수급을 맞추게 된다.

처음에는 주파수 설정 문제로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전력거래소는 태양광 정전을 막기 위해 주파수를 59.8Hz 이상인 59.85Hz로 설정해야 했다. 그런데 실제 시장에 참여할 고객사 현장(제철, 제지)에서는 전원을 내리고 올릴 때 순간 주파수가 59.85Hz 이하로 하락하는 ‘헌팅’이 하루에도 1~2번씩 발생하고 있었다. 헌팅문제를 피하려면 외부에 감지 및 발령 시스템을 설치해야 하지만 통신 지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외부 설치도 할 수도 없었다.

전력거래소는 고심 끝에 발전기 주파수 운영기준에 따라 신뢰도 규칙을 설정하고 기존 계획인 59.85Hz 이하일 때 UFR 신호로 즉시 부하 감축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59.8Hz 이하로 내려가면 정지되는 2만여개의 태양광인버터 설정값을 더 낮게 바꾸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제도는 11월부터 긴급제도로 시작하고 태양광 인버터 주파수(59.8Hz) 설정 변경을 완료할 때까지 시범 운영으로 진행된다. 주말, 공휴일을 포함해 36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모두 운영 대기 시간이다.

전력거래소는 시범 기간을 1년 1개월로 예상하고 있다. 다음 차수 일반 DR과 함께 패스트 DR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정산금은 실적급만 지급된다. 발령 횟수에 따라 2600~1040원/kW-10분으로 차등 보상한다. 1회 발령 시 kW당 2600원을 주고 2회엔 1560원, 3회 이상부터는 1040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본급은 없지만 일반 DR의 기본급 수준을 실적급에 적용했다고 보면 된다.

발령조건 외 정산금과 운전유지비도 지급된다. 제도가 의무가 아닌 만큼 거래제한과 위약금도 없다.

◆10년 전부터 추진...정산금 일반 DR 2~6배

해외 전력시장에서도 계통 운영기관들은 신재생발전 비중 확대로 인한 변동성에 대응할 목적으로 응동속도가 빠르고 가성비가 좋은 패스트 DR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패스트 DR 제도는 보통 자원별 기술적 특성에 따라 1~3차 예비력으로 구분된다. 전력거래소의 급전지시 없이 Local 발전원 스스로 주파수를 검출해 발전출력을 조정하는 거버너 프리(G/F, Governor Free)가 1차 예비력이다. 제철용 전기로나 대형 유통마트 등 산업설비가 이에 해당한다. 2차 예비력은 전력거래소 중앙제어시스템에서 주파수를 관리하는 AGC(Automatic Generation Control) 방식이다. 하수처리장과 수영장 내 펌프 등이 해당된다. 3차는 대기·대체 예비력이며 산업용 DR 자원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1차 예비력 중에서도 효과도 크고 기술면에서 적용이 수월한 거버너 프리-UFR(저주파 계전기) 연계 방식으로 진행된다. 해외는 1차~3차까지 다양한 패스트 DR 자원이 예비력 시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PJM의 경우는 2009년부터 자동발전제어 시장에 다이내믹(Dynamic) DR 자원을 참여시켰다. 시장규모는 현재 2~3GW 규모로 성장했으며 2차·3차 예비력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기존 일반 DR과 다르게 일반 발전기 수준의 응동 및 출력제어능력을 요구하는 등 강력한 신뢰성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럽에서도 패스트 DR 제도를 시행 중이다. 특히 독일 속응성 자원으로 구성된 1차 예비력 자원량이 1GW에 육박하며 2차·3차 예비력 자원의 규모는 더 크다. 이외에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에넬엑스(EnelX)가 160MW(2018년 기준) 정도의 용량으로 참여 중이다.

패스트 DR 시스템 국책연구를 진행한 이용훈 호디 대표는 “정산금 수준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일반 DR과 비교해 보통 2~6배 정도 높게 받고 있다”며 “미국은 발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신보령 1호기가 불시 정지하자 45만kW 태양광 설비들이 연이어 정지했다. 계통주파수가 59.8Hz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멈추도록 인버터가 설정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패스트(Fast) DR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3월 신보령 1호기가 불시 정지하자 45만kW 태양광 설비들이 연이어 정지했다. 계통주파수가 59.8Hz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멈추도록 인버터가 설정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패스트(Fast) DR을 도입하기로 했다.

◆기본급+실적급 형식으로 vs 추후 검토 예정

패스트 DR 개장을 앞둔 가운데 수요관리 사업자들은 정산기준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패스트 DR은 속응성 자원이라 신뢰도 확보를 위해 더 큰 비용이 들어가는데 보상은 적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패스트 DR은 일반 DR보다 리스크가 크고 비용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본급+실적급’ 형식이나 해외 수준의 실적급이 지급돼야 한다”며 “정산금이 합리적이어야 고객사를 제도에 유도할 수 있고 실효성 있는 자원 규모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량기 등 필수설비 구축 비용도 사업자에게 부담이다. 일반 DR과 달리 계량기, 모뎀 등을 전력량정보제공사업자를 통해 설치해야 한다. 거기에 시스템 구매, 설치 비용까지 합치면 900만~1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형식승인계량기도, 계량데이터도 전력량정보제공사업자를 통해 설치·운영할 수밖에 없어 초기 비용이 상당하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그는 “시장에 참가하지 않으면 쇠퇴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나빠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이런 것을 이용하지 말고 전력수급 안정화라는 본래 목적 달성을 위해 사업자와 협의하며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시범사업이 언제 정규화가 될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높다”며 “내년 7차 연도부터 정식제도가 된다는 약속이라도 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시장 제도이기 때문에 의무가 아니다. 그래서 페널티도 없다”며 “실적급도 적어 보이지만 10분간만 실행되는 것을 고려하면 일반 DR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시범운영 기간 동안 감축 신뢰도 검증 등 제도를 보완해 차기부터 기본급 지급 제도로 개편할 것”이라고 덧붙었다.

한편 23일 긴급 규칙개정위원회에서 패스트 DR 제도도입 기본계획이 통과됐다. 산업부는 오는 30일(예정) 전기위원회 승인을 거쳐 다음 달 1일부터 패스트 DR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용어

① DR(수용반응제도): 전기사용자가 스스로 전력수요를 줄여서 전력수급 상황을 개선시키고 줄인 전력 수요만큼을 금전으로 보상받는 제도.

② 주파수: 교류의 전압이 1초동안 반복되는 변화의 횟수.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60Hz다.

③ Governor Free:계통 주파수가 급락하면 발전기들이 이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반응하는 운전 방식.

④ AGC: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시스템이 수요 변화를 따라 지정된 발전기의 전력생산량을 낮추는 방법으로 공급량을 자동 조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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