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 재생에너지 전력사용 압박 강도↑
재생에너지 선택권 이니셔티브 22일 발족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해 말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전력사용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출처=그린피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해 말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전력사용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출처=그린피스)

지난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선 정치, 경제, 시민·환경단체 대표 인사들이 모여 우리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 확대 및 인프라 구축에 찬성하는 선언을 했다. 일명 RE100(Renewable Energy 100%) 기업들을 지원하는 각계각층 인사들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환경 조성을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선택권 이니셔티브’를 결성한 것이다.

이니셔티브에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활발한 입법활동을 하는 국회 신재생에너지 포럼(공동 대표 이원욱, 전현희 의원)과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 환경운동연합, 생명다양성재단, 에너지시민연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등 6개 시민·환경단체 등이 함께했다.

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신한금융그룹, KB금융그룹, DGB금융그룹, AB인베브 코리아(오비맥주 모회사), 이케아 코리아, DHL코리아, 대덕전자, 엘로티베큠 등 국내 유명 기업들이 가입했다.

이니셔티브는 내년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전력구매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힘쓸 계획이다. 또 2021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기업과 사용선언기업을 최소 50개사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 ‘RE100, 우리 기업들도 피할 수 없다’

지난 1월 그린피스는 삼성전자가 독일 베를린궁에 설치한 삼성전자 옥외광고판에 현수막을 덧씌워 삼성전자의 100% 재생에너지 사용 약속을 촉구하는 ‘RE100퍼포먼스’를 펼쳤다. 또 지난해 말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도 북극곰 복장을 한 채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그린피스의 이 같은 요구를 수용했다.

‘RE100’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열 등 에너지를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로 100% 공급하는 것을 뜻한다. 2014년 구글, 애플, GM, 이케아(IKEA)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RE100 이니셔티브 가입을 통해 재생에너지 100% 전환 방침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지난해 말 기준 이니셔티브 가입 기업은 122개사까지 불어났다. RE100 참여대상은 에너지소비자들인 기업들로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신기후체제 출범 이후 각국이 에너지·기후변화 정책을 펼치면서 친환경적인 생산 활동을 소비자, 투자자, 지역사회가 원하고 있고,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크게 개선돼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에도 이바지하게 된 게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하는 주요 동인(動因)이다.

기업들의 동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동종업종에 있는 경쟁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이미지 하락 등 부정적 효과를 우려해 동참을 서두르고 있다. 또 RE100 가입 기업들은 공급사슬(Supply Chain) 상 협력 업체에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토록 동참을 요청하는 때도 있다. 가령 애플은 휴대폰 생산 시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관리하고, 부품·소재 생산단계에서 중국, 일본 등 23개 협력업체가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토록 서약을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해관계에 있는 국제 기업의 요구를 무시할 순 없다. 노르웨이 연기금은 자국에서 한국전력공사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다. 완제품뿐 아니라 부품공급을 하는 삼성전자도 세계 여러 기업에 같은 요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BMW로부터 전기차 배터리 납품분에 대해 재생에너지 전력사용을 요구받아 울산공장에서 이를 해소했다.

LG화학은 BMW와 폭스바겐에서 같은 요구를 받아, 폴란드 공장증설로 대응했다. SK하이닉스는 애플로부터 유사한 요구를 받았다. 네이버 역시 그린피스에 재생에너지 전력사용에 대한 요청을 받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RE100 참여기업 중 일부 최종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세계 각지에 있는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청하고 있다”며 “점차 재생에너지사용 비중이 적은 국내 기업들의 입찰 수주 활동, 외국계 기관 투자유치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발족식에 참여한 이니셔티브 참여 단체들도 “우리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약속했지만 재생에너지 사용 희망기업조차 에너지 선택권이 없다”며 “우리 기업들의 세계 경쟁력 저하는 물론 국내 에너지전환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재생에너지 구매권을 확보하지 않을 경우, 국내외 기업들 투자를 비롯해 일자리 창출기회를 지속해서 놓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22일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 발족식에서 국회, 환경·시민단체, 기업 관계자들이 RE100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지난 22일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 발족식에서 국회, 환경·시민단체, 기업 관계자들이 RE100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 ‘민간 재생에너지 구매시장 확대 필요’

발족식에서 이원욱 의원은 “기업의 재생에너지 확대 선언 및 재생에너지 선택권 요구선언은 전체 산업계 및 국내 에너지전환에 긍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줄 것”이라며 이니셔티브 출범 의의를 밝혔다.

이 의원은 지난 6월 말 재생에너지 구매제도와 녹색전력요금(Green Pricing) 등을 주요 내용으로 일명 ‘RE100법’이라 불리는 전기사업법 개정안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자유로운 재생에너지 전력구매는 쉽지 않다. 한국전력공사 이외에 전력을 팔수 없는 현 전기사업법과 발전공기업이 주도하는 RPS(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등으로 민간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선택 구매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니셔티브 발족식에서 김지영 삼성전자 글로벌 EHS팀 수석은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전력은 2016년 기준 16tWh로 세계 두 번째다. 지난해에는 18tWh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며 “국내에서만 12tWh를 사용했다. 이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10GWh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목표연도인 2030년에는 28tWh의 태양광 발전설비가 필요하다. 태양광 설비용량이 3.5GW인데 삼성전자가 70%를 써야 할 판이다. 여의도 넓이의 90배, 축구장 150개 면적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단지에서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국내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생에너지 보급목표를 77% 상향 조정해야 한다. 협력사의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부담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불가능한 목표다. 특히 RPS제도 에 따라 RPS공급의무자들이 우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배정받는 현 시장구조에서는 어렵다고 본다. 현 제도뿐 아니라 시장규모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이진선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RPS제도는 한정적인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만을 충족할 수 있을 뿐”이라며 “민간영역에서 더 많은 재생에너지 전력 구입·구매가 발생할 수 있도록 시장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