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으로 ‘자멸의 길’ 걷는 발전 5사…대안도 대책도 없어
인원 줄고 세수 줄고…가뜩이나 작아지는 지방경제 악화 우려

지난 2020년 1, 2호기가 폐지된 보령화력발전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1, 2호기가 폐지된 보령화력발전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발표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2034년까지 30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전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전환 바람에 발맞춰 우리 정부가 본격적인 탈석탄 정책을 펼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이 같은 기조는 최근 확정한 제10차 계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계획에서는 오는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19.7%, 2036년까지 14.4%로 줄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036년 각각 34.6%, 30.6%에 달한다.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전원으로의 전환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탈석탄 정책은 오로지 석탄화력을 폐지해 깨끗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깨끗한 전원으로의 전환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는 정부도 업계도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부작용을 미리 예측하고, 대안을 마련해야만 제대로 된 청정 에너지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 “발전 5사 스스로 망하는 길 걷고 있다” 지적 왜?=정부 탈석탄 정책의 성공에는 석탄화력 위주로 운영되는 발전 5사 직원들의 희생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탈석탄으로 인해 발전 5사의 일자리 역시 현저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발전 5사 노조에 따르면 석탄화력을 폐지하고 LNG 발전소로 전환할 경우 유지되는 일자리는 50~6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효율적인 운영을 추구하는 민간의 경우 50%, 공공성을 추구하는 공공기관 사업장의 경우 60% 정도가 한계라는 것.

재생에너지는 더욱 심각하다. 수천명의 운전·정비 인력이 필요한 화력발전과 비교해 재생에너지는 큰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 5사 노조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유지되는 일자리는 1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한국에너지공단이 발표한 ‘2021년도 신재생에너지 산업통계’를 살펴보면 이 같은 우려가 단순히 전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발전업 사업체 수는 10만4016개로 전년도 7만8172개 대비 2만5844개(3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수만 2만5000여개가 늘어난 셈이다.

반면 운영 및 유지보수 분야 인력인 서비스업 종사자수는 2021년 5690명으로 전년 5318명과 비교할 때 372명(7%)으로 소폭 증가했다.

1년간 발전 사업체 2만5000여개 가운데 대다수는 재생에너지, 그중에서도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다. 그만큼 신재생에너지 설비 규모도 그에 준하게 확대됐다는 뜻인데 서비스업에서는 고작 300여명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10만4016개에 달하는 발전업 사업체 숫자와 비교되는 전체 서비스업 일자리 5690명이라는 초라한 숫자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보다 앞서 탈석탄을 추진한 독일의 경우 지난 2018년 석탄위원회를 조직하고 2038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종료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와 함께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는 석탄 지역에 400억유로를 투자하는 법안을 제정한 바 있다. 이 예산은 약 3만2800명에 달하는 석탄 산업 근로자들의 재취업을 위한 교육 등 지원에 사용될 계획이다.

탈석탄 정책 추진에 앞서 가장 큰 피해자인 석탄 관련 노동자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고민을 우선했다는 것.

반면 한국은 문재인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모두 탈석탄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된 노동자 지원 정책은 아직까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정부에 조직된 에너지전환 정책을 끌어 갈 탄소중립위원회에도 발전노동자 관계자들은 전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정부 탈석탄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이며 이해당사자들이 타인의 논의에 의한 대책 마련에만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이유에서 발전 5사는 멀지 않은 미래에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 수 있다는 우려에 봉착해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남동발전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임직원수는 2929명에 달했을 뿐 아니라 ▲한국중부발전 2898명 ▲한국서부발전 2842명 ▲한국남부발전 2738명 ▲한국동서발전 2585명 정도로 5개사를 합쳐 1만3992명에 달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현장 인력의 경우 LNG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2050년에 살아남는 숫자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남는 인력은 극히 소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지난 2021년 확정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LNG 발전 비중은 0(A안)~5%(B안)에 그치기 때문이다.

폐지되는 석탄화력에 대응한 인력 재배치도 사실상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공공연구소가 지난달 25일 공개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당장 중부발전이 운영하고 있는 보령화력 1,2호기의 경우 지난 2020년 폐지와 함께 대부분의 인력을 타 사업장으로 재배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는 인근의 신서천발전소가 시험운전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사회공공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보령 1,2호기의 경우 2021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서천화력발전소로 대부분의 인력을 재배치할 수 있었다면 당장 오는 2025년으로 예정된 보령 5,6호기 폐쇄 시점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탈석탄 정책으로 인해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발전 5사는 결국에는 통합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 경우 본사 인력도 극단적으로는 5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수축할 것이 예상된다. 회사를 통합할 경우 본사 인력을 굳이 전원 유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도 발전 5사도 이 같은 암울한 미래에 대한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전 5사 입장에서는 당장 정부 탈석탄 정책 등 에너지전환에 힘을 보태지 않으면 경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만큼 억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전력 전문가 일각에서 “발전 5사가 스스로 망하는 길을 걷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쪼그라드는 지방경제…탈석탄으로 가속화될까=탈석탄 정책은 가뜩이나 쪼그라들고 있는 지방의 수축을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거론되는 곳이 중부발전의 보령화력발전소가 소재한 보령시다.

보령시 인구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15년 10만4800여명이었던 보령시 인구는 지속적인 수축을 이어가면서 2021년 9만8400명으로 10만명 선을 무너뜨렸다. 인구수 회복을 위해 2021년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2022년 9만7200명, 2023년 9만6999명(1월 기준)으로 여전히 감소세를 보이는 실정이다.

중부발전에 따르면 현재 보령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중부발전 인력은 800명에 달한다. 여기에 운전과 유지보수 등 여러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합치면 2000여명의 인원이 보령시에 상주한다. 보령시 인구의 2% 정도를 한 개 사업장이 차지하고 있다.

보령화력이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폐지될 경우 보령시 인구 규모에 미칠 악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줄어드는 사업장과 인력은 곧 지방의 세수와 연결된다.

폐지에 앞서 보령화력 1,2호기가 납부한 지역자원시설세 규모는 2020년 연간 12억7400만원, 2019년 14억7700만원, 2018년 16억2000만원 정도다. 총 8개호기로 이뤄진 보령화력발전소 가운데 1,2호기가 납부한 세금만 연간 10억원이 넘어가는 정도다. 이 세금은 지난 2021년부터 그대로 사라졌다.

광역지자체 입장에서는 큰 세수가 아니겠지만 기초지자체 단위로 넘어갔을 경우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금액은 충남도와 보령시가 각각 3대 7 정도로 나누게 된다.

전체 호기로 따졌을 때 당시 보령화력이 납부한 지역자원시설세는 100억원에 근접한다는 게 중부발전 관계자의 설명이다. 보령시가 연간 70억원 정도의 세금을 보령화력에서 안정적으로 거둬들이고 있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 금액은 내년부터 2배로 껑충 뛰어오른다. 전체 발전량에 비례해 kWh당 0.3원씩 납부하는 지역자원시설세를 2024년부터는 0.6원으로 100% 인상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이 지난 2021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발전소 직원들이 개별로 납부하는 세금과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전소가 주변 지역에 지원하는 혜택 등을 포함할 경우 대책 없는 발전소 폐지가 지방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승신 C2S컨설팅 대표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탈석탄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지자체와 발전사가 가장 먼저 위험해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앞으로 지자체들이 계속해서 수축과 소멸의 과정을 겪게 될 가운데 지자체가 지역을 살리려면 지역거점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며 "마찬가지로 탈석탄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발전사가 첫 번째 공기업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수익구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석탄화력이 다 문을 닫으면 발전소 가치가 없어지고, 가장 먼저 사라지기 좋은 기업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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