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해체 산업 육성전략, 글로벌 톱5 도약 목표 밝혀
OECD NEA 해체협력 프로그램 등 국제협력체제 구축
원자력안전 관련 법령에 원전 조기·부분해체 가로막혀

독일 뮐하임 케를리흐(Mülheim-Kärlich) 원전의 냉각탑 철거 모습. 컨설팅업체 베이츠화이트(BatesWhite)에 따르면 2050년 기준 전 세계 원전해체 시장 규모는 약 5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출처=Deutsche Welle
독일 뮐하임 케를리흐(Mülheim-Kärlich) 원전의 냉각탑 철거 모습. 컨설팅업체 베이츠화이트(BatesWhite)에 따르면 2050년 기준 전 세계 원전해체 시장 규모는 약 5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출처=Deutsche Welle

[전기신문 정세영 기자]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은 약 549조원으로 추산된다. 2020년대 중반부터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이 증가해 시장이 급격하게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2030년부터는 체코, 대만 등 후발 원전도입국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원전해체 산업은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 초기 원전도입국을 중심으로 이미 산업구조가 형성돼 진입장벽이 높은 대표적인 분야다. 그만큼 기술과 인력, 생태계 기반을 갖추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9년 ‘원전해체 산업 육성전략’을 공개하면서 원전해체를 원전산업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함으로써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 톱5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원전해체 산업 육성전략…3단계 세부과제 마련, 글로벌 톱5 목표

정부가 지난 2019년 발표한 원전해체 산업 육성전략은 글로벌 시장 확대에 대비해 조기에 산업역량을 확충하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준비됐다.

당시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국내 원전 12기가 설계수명 만료로 해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를 위해 초기일감 창출을 위한 선제적 투자와 핵심 인프라 등 전문기업 육성기반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단계별로 ▲원전해체 준비기(2019~2022) ▲시장 성장기(2023~2030) ▲글로벌 도약기(2031~)로 구분, 단계마다 초기시장 창출·인프라 구축, 원전해체 전문기업 육성, 글로벌 시장 진출 기원 등의 추진전략을 마련했다.

먼저 원전해체 준비기의 초기시장 창출·인프라 구축을 위한 세부 과제로 고리 1호기의 해체 작업이 착수되기 이전이라도 선제적인 투자에 나선다고 밝혔다.

고리 1·2호기와 월성 1호기의 최종해체계획서 작성 사전용역 등 25개 사업을 조기 발주하는 한편, 해체산업 육성을 위한 핵심 인프라인 원전해체연구소를 부산·울산(경수로), 경주(중수로)에 각각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단계인 시장 성장기의 원전해체 전문기업 육성을 위한 추진 과제로 원전 기업의 해체역량 전문화를 위해 생태계, 인력, 금융 등을 종합 지원한다. 정부는 원전기업의 사업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금리·대출 등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단계인 글로벌 도약기에는 고리 1호기의 해체 실적을 발판삼아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한다.

특히 미국, 영국 등 해체 선도국과 공동연구를 비롯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해외진출 기반을 마련한다. 한미 원자력공동위 산하에 원전해체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것도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됐다.

또한 정부는 원전해체 기본계획과 규제기준, 전문기업 확인제도, 원전해체 관련 정보공개 확대 등도 세부 추진과제로 내세워 산업육성과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제도정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오는 2035년까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함으로써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 톱5 국가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오른쪽부터) 정재훈 한수원 사장과 남요식 전무, 필립 크노흐 오라노 사장, 알란 반데르크루이센 부사장이 원전해체 협력 개정 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오른쪽부터) 정재훈 한수원 사장과 남요식 전무, 필립 크노흐 오라노 사장, 알란 반데르크루이센 부사장이 원전해체 협력 개정 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佛 오라노 등과 국제협력 성과 거둬…핵심인 조기·분리발주 일정 더뎌

지난 2019년 정부의 원전해체 산업 육성전략 발표 후 원전기업의 많은 관심 속에 협회 등 자체적인 네트워크가 구성됐다. 다만 공언한 대로 해체사업 물량이 가시화되지 않고 진입조건도 명확하지 않아 선제 투자가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해외진출 기반 강화를 위한 국제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4개국 5개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개의 관련 국제기구에 가입해 해체 기술정보와 경험을 교류하고 있다.

특히 한수원은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원자력 국영기업인 오라노(Orano)와 원전해체 사업 협력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국내 기술인력의 해외해체 현장 파견 기회가 이전보다 확대되고, 해외 전문가의 기술자문과 전문가 초빙 교육 등도 원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밖에 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 원자력기구(OECD/NEA)의 해체협력 프로그램에도 가입했다.

원전해체 기업 육성을 위한 펀드도 지난 2020년 6월을 기준으로 총 445원 규모로 조성돼 운영 중이다. 투자분야는 한수원의 원자력 분야 유자격 등록 제조기업을 비롯해 두산중공업의 원자력 분야 협력기업, 원자력산업협회의 원전해체 관련 등재기업 등이다.

한수원과 원전산업계는 또 기존 원전산업 인력을 해체인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4개 국내외 교육과정을 통해 전문인력 248명을 육성했다.

문제는 해체수요 창출을 위한 조기· 분리발주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 착수 이전이라도 조기발주가 가능한 부분을 최대한 발굴해 원전기업의 해체수요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오는 2025년까지 총 3900억원의 발주물량을 발굴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2019년 121억원 ▲2020년 472억원 ▲2021년 455원이 발주된 것으로 나타나 당초 계획보다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고리원전 1호기 전경. 고리 1호기는 원자력안전 관련 법령에 가로막혀 영구정지 후 4년 동안 실질적으로 어떤 해체작업도 진행되지 않았다. 제공=연합뉴스
고리원전 1호기 전경. 고리 1호기는 원자력안전 관련 법령에 가로막혀 영구정지 후 4년 동안 실질적으로 어떤 해체작업도 진행되지 않았다. 제공=연합뉴스

◆법령에 가로막힌 원전 조기해체…업계 “관련 법령 정비 필요”

이처럼 정부가 원전해체 산업 육성을 강조했지만 현 시점까지 실질적으로 원전 해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영구정지 됐지만, 앞으로도 수년 후에야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 상 원전은 영구정지가 되고 난 후 7년이 지나야 해체에 돌입할 수 있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모두 이를 충족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원자력업계 일각에서는 원전해체 산업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방사선에 오염되지 않은 비방사선 시설에 대해서는 사전 철거를 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비방사선 시설은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도 해체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등 안전에도 문제가 없으므로 원자로를 비롯한 핵심시설의 해체 이전이라도 조기에 해체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영호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전문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은 원전 영구정지와 해체 사이에 비방사선 분야의 선제적인 해체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원자력안전법 등 관계법령에 묶여 고리 1호기는 영구정지 후 4년 동안 어떤 해체작업도 진행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경철 한수원 원전사후관리처 부장도 지난해 12월 열린 원전해체 비즈니스 포럼에서 “현행 법·제도 하에서는 해체승인 전(최소 7년)까지 어떠한 형태의 해체공사도 착수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해체실적을 가진 검증된 기업만이 시장 진입이 가능한 글로벌 해체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비방사선 시설의 해체 기술을 현장실증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원자력업게 일각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여당은 원전 일부해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 고리 1호기 등의 조기해체도 요원하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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