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유럽 등 놓고 선경쟁-후협력 체제 돌입
美 웨스팅하우스, 체코·폴란드 사업 제안서 제출
자금조달, 실증 플랜트 등 수주 경쟁력 제고 필요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전경.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전경.

[전기신문 정세영 기자] 올해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의 신규 원전 사업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에 이어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특히 업계 일각에서는 경쟁국 대비 30% 이상 저렴한 건설비와 운영 노하우, 공급망을 갖춘 우리나라가 미국과 협력한다면 원전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양국의 전통적인 원자력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윈윈(Win-Win)’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해외원전 사업은 각자도생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이 발표한 해외원전 공동진출 선언에도 불구 양국이 ‘선경쟁-후협력’ 체제로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전문가는 자금조달 능력 제고를 비롯한 수주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제언한다.

◆한미 해외원전 공동진출…양국 정부 의지에도 한계 노출

앞서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향후 해외원전 시장에서의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과 함께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Factsheet)는 양국이 원전 공급망을 함께 구성하고, 해외원전 시장에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발표 당시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신규 대형원전 수주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우리 정부 관계자도 “한미 정상 간 합의를 계기로 양국 주요 기업 간에도 구체적인 협력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 후 양국 원자력업계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비롯해 원전 운영, 원전산업계 생태계 유지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원자력협력 워크숍에서는 SMR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형원전 시장 진출을 위한 협력은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도 큰 진전이 없었다.

사안에 정통한 원자력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 발표 이후 대형원전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양국 사업자 간 조율돼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대형원전 시장 공동진출이 좀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이 원전 수주에 성공한다면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재권 등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격전지로 급부상 중인 동유럽 시장…美 웨스팅하우스도 눈독

우리나라는 현재 체코와 폴란드 등 동유럽의 신규 원전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은 지난해 11월 당국의 요구에 따라 안보평가 답변서를 제출하고, 올해 입찰서 제출을 앞두고 있다. 폴란드 원전사업 역시 올해 상반기에 제안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 웨스팅하우스도 동유럽 시장에 상당한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미 웨스팅하우스가 폴란드 정부에 제안서 제출 의향을 전달한 가운데 폴란드 국영 통신 PAP는 “미국 웨스팅하우스도 올해 1분기 벡텔과 공동으로 AP1000을 기반으로 한 원전 건설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특히 미국과 폴란드 정부 간 ‘원자력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협력’을 체결함에 따라 수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미 협력 가능성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이미 ‘선경쟁-후협력’ 체제에 돌입했다고 보는 게 맞으며, 만약 미국이 폴란드 원전 수주에 성공한다면 한국 기업이 주기기 제작 정도에 참여하는 그림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국이 처음부터 컨소시엄을 구성해 신규 원전 수주에 뛰어들기보다는 둘 중 어느 국가가 수주에 성공하면 다른 국가가 하청 형태로 참여하는 형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국 미국과의 협력에 지나치게 기대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수주 역량 강화에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주 경쟁력 강화 해법은…자금조달 등 극복할 과제 산적

국내 전문가들은 대부분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진행되는 동유럽 원전 사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장 첫 번째로 강화해야 하는 부분은 자금조달 능력이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폴란드 정부는 공급사가 전체 사업비의 49%를 직접 조달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약 40조원 규모의 원전 사업비 중 20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한수원 등이 직접 마련해야 한다.

실증 플랜트를 구축하는 것도 또 다른 과제다. 일반적으로 발주국 정부 또는 사업자는 공급사에 똑같은 레퍼런스 모델 구축을 요구한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 당시 우리나라는 UAE 정부의 요구에 따라 바라카 원전과 동일한 설계에 입각해 신고리 3, 4호기를 건설했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동유럽 원전 사업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레퍼런스 모델 구축을 요구할 텐데 현재 우리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이 배제돼 있다”며 “결국 원전을 수출하려면 이 부분에 대한 수정도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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