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다. 지난해 10월 우리나라가 세계 다섯 번째로 탄소중립을 선언할 때만 하더라도 사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 12월에 2030년 NDC 감축목표를 UN에 제출할 때만 하더라도 BAU라는 모호성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기존의 감축량과 유사한 24.4%가 유지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후 국내외 상황은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대내적으로는 탄소중립위원회를 중심으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수립과 2030 NDC 감축목표 설정 작업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이와 동시에 산업부를 비롯한 각 부처는 탄소중립 이행계획 수립에 분주했다. 그래서인지 탄소중립 R&D 전략, 에너지 탄소중립 혁신전략 등이 모두 마무리된 세밑의 한가로움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대외적으로는 새로 등장한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를 소집하면서 주요국 NDC 감축목표 상향을 요청했고, 우리나라도 그에 화답했다.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35%! 11월에 개최된 COP26 참석에 앞서 우리나라는 다시 40%로 상향 조정했다. 때마침 개최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탄소중립이 가장 큰 국정 현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백가쟁명 논의의 한 복판에서 에너지 이슈가 정치화되어 우리 사회가 너무 많은 힘을 소비한 것은 아닌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탄소중립은 혁명이 아닌 혁신의 길이니 모두가 힘을 합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국제적 환경도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UN은 11월 COP26의 피날레로 석탄화력 ‘폐기’를 의결하려 했으나, 인도와 중국의 버티기로 석탄화력 ‘감축’ 합의에 만족해야 했다. 피터 자이한이 예견한 석유 수요 피크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를 비웃듯 전 세계는 유가 상승에 맥을 추지 못했다. 결국,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은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맹국에게까지 비축 원유의 방출을 요청하기도 했다. COP26에서 석탄발전 폐기를 몸으로 막아내었던 인도 정부는 11월 중순 지독한 스모그 현상으로 뉴델리 지역 반경 300km이내 11개 석탄발전소 중 6개 가동중단을 명령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탄소중립 선두주자 미국은 비축원유방출을, 석탄발전 대표주자 인도는 자국의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형국이다.

유럽은 어떠한가? 에너지전환 선두국가 독일의 메르켈 정부는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미국의 거센 압력을 물리치고 노르트스트림 2 프로젝트를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재생에너지로 가기 위한 브리지 수단으로 천연가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과 러시아 간의 급속한 관계 냉각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2025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75%에서 50%로 낮추기로 했던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원전 감축 시점을 2035년으로 연장하더니만, 최근 들어 EU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 리스트에 원자력 추가를 요청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 상황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 이슈가 뒤엉켜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각국은 우리나라 수소경제 상황도 주시하고 있다. 2019년 1월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국내 수소경제는 그간 연료전지, 수소차 중심의 수소 활용확산에 방점이 있었다. 그러나,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수소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장기적으로 그린수소의 안정적인 공급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특히, 10월에 발표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2050년 국내 수소 수요의 80%를 해외 수소에 의존하는 계획이 포함되자 호주 및 중동국가들을 중심으로 각종 수소 공급계획들을 제안해 오고 있다. 우리로서는 세계적인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하느냐, 외국의 수소경제 테스트베드가 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이럴수록 왜 탄소중립인가에 대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대표적인 비가역 현상인 온실가스 배출의 감축은 인류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아마존의 제프리 베조스와 같이 지구를 탈출해서 화성에라도 가서 살겠다는데, 그 각오면 이 지구상에서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중의 하나가 탄소중립이라면 반드시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이와 동시에, 탄소중립을 통한 국가적 발전의 지향점에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을 계기로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탄소중립, ESG, RE100 등의 새로운 산업 환경을 피할 수 없다면 이를 국가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 올해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내년부터는 탄소중립 국가 성장동력이다!

손정락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에너지산업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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