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에너지 지형도 변화, 정책 키워드는 ‘원자력’
프랑스 소형원전 개발 참여, 미래 원전시장 ‘바로미터’
국내 원전도 탄력운전·SMR 통해 재생에너지와 공존 가능
화석발전 퇴출 간극, 신한울 3, 4호기·SMR로 메워야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기신문 정세영 기자] 미국, EU 등 주요 선진국이 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포함한 원자력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탄소중립 시대에 원자력의 역할이 재조명받고 있다.

올해 속속 발표된 주요국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대형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개발 방침을 밝히는 한편 청정발전, 청정에너지원 등의 개념을 도입해 원자력을 새롭게 포섭하려는 시도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원자력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각 후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자력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연일 내놓고 있다.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사진>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주요국은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원자력을 낙점했다”며 “급증하는 전력수요와 전체 발전량의 65%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대폭 강화된 안전성을 자랑하는 SMR은 전력 생산의 탈탄소화, 분산화 추세에 발맞춰 화석연료 발전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며 “차기 정부는 원자력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의 경쟁을 통해 균형 있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이 발표한 에너지정책의 공통 키워드는 원자력이다. 현지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유럽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에는 원자력이 누락됐지만 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현지에서 강하게 나오고 있다.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동유럽은 신규 대형원전, 서유럽은 노후 원전에 대한 교체 수요가 높다. 체코와 폴란드는 신규 원전을 건설해 석탄과 가스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대표적인 동유럽 국가다. 서유럽은 퇴역 예정인 노후 원전을 SMR로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형원전 투자에 망설였던 프랑스가 최근 1조5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발표한 게 인상 깊다.

미국도 이달 초 바이든 대통령이 무탄소전원에 원자력을 포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태양광, 풍력과 함께 원자력을 청정에너지(Clean Energy)로 인정한 셈이다. 미국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원자력 유턴’을 선언한 바 있다.”

▶원자력정책 또는 시장 동향과 관련해 특기할 만한 국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의 행보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프랑스는 대형원전 시장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핀란드 오킬루오토(Okiluoto), 자국 플라망빌(Flamanville) 원전의 건설 공기가 2배 이상 지연되면서 건설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소형원전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드디어 전략을 바꾼 것 같다. 프랑스의 참전으로 SMR 개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본다. SMR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스웨덴도 주목할 만한 국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한 스웨덴은 원전에 일종의 벌금 성격의 세금을 부과했다. 원전의 경제성이 좋다 보니 세금을 부과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금을 철폐하고 원전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신재생과 원자력의 공존 가능성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지나친 편견이라고 본다. 결국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려면 모든 발전기의 출력조절능력이 관건일 텐데 어떠한 발전기도 100% 출력만 내도록 설계되지 않는다. 원전도 당연히 부하추종이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원전은 일일부하추종(Daily Load Follow)이 가장 중요하다. 재생에너지가 출력을 내는 낮에는 원전의 출력을 50% 정도로 낮추고, 밤에는 100%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말한다.

한수원 입장에서 일일부하추종 운전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그동안 출력조절을 해본 경험이 없고, 운전원이 신경 써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원자력이 전력수요에 기여하려면 무조건 못한다고 문을 걸어잠글 일이 아니다. 특히 SMR은 재생에너지와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형원전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출력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혁신형 SMR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SMR 기술개발과 규제개선과 관련해 현재 진척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준다면.

“현재 5000여억원 규모의 예비타당성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소형 원자로의 특성을 반영한 규제기준 개선을 위한 법안 준비 작업은 당초 계획보다는 더딘 상황이다. 예타 결과는 공식적으로 내년 5월에 발표될 예정인데, 개인적으로는 3월경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리라고 본다. 대선도 끝나는 시점이기 때문에 이후 법안 준비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규제기관이 SMR 규제개발 R&D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다음 달부터 연구에 착수한다는 점이다. SMR 개발을 마치고 나서 규제기관에 인허가를 신청하면 재설계에 대한 리스크가 발생한다. 사업자와 규제기관 간 정보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져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기를 바란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차기정부는 어떤 에너지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보는가.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차기정부의 에너지정책 변화는 불가피하다. 원자력 없이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건 우리 국민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준다. 2030 NDC 목표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전체 발전량의 65%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발전을 재생에너지만으로 대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전력수요는 오는 2050년까지 2.3배 치솟는다. 원자력만이 유일한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석연료 퇴출에 따른 간극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 정부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차기 정부가 기존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과 함께 이미 부지가 확보된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할 것을 요청한다. 또 수출용으로 한정된 SMR도 차기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원자력이 에너지전환에 기여할 수 있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어떻게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보는가.

“원자력 안전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지적된다. 하나는 원전 밀집도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후핵연료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원자력 안전은 개수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안전을 좌우하는 것은 밀집도가 아니라 기술, 제도, 그리고 안전문화다. 또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은 공급망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에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교체가 가능하며 기술인력도 보유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땅속 깊은 곳에 묻는 것보다 안전한 방안은 없다. 마찬가지로 땅속 깊은 곳에 묻으려면 결국엔 기술 개발이 핵심 관건이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문제는 반핵단체가 항상 반대해서 주민수용성이 매우 안좋다. 원자력 안전을 정말로 걱정한다면 오히려 빨리 부지를 확보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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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원자력공학 박사 ▲국가과학기술심의위원회 에너지환경전문위원장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 ▲한국연구재단 원자력단장 ▲제33대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 ▲현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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