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온실가스 스코프 3 잡아야 탄소중립 달성 가능
건설 분야서 스코프 3 영향 커…현행 제도는 무용지물

최근 2030년 NDC를 최소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기후변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일러스트=연합뉴스)
최근 2030년 NDC를 최소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기후변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일러스트=연합뉴스)

[전기신문 윤대원 기자] 오는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추가로 상향하는 내용의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일부 탄소중립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쪽짜리 법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탄소중립기본법은 2018년 기준 기존 26.3%(2017년 기준 24.3%) 수준이었던 NDC를 최소 35% 이상으로 9%p가량 상향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이번 법안을 통해 탄소중립 시대를 열겠다는 장대한 목표가 수립됐지만, 실질적인 ‘숨은 온실가스’에는 여전히 접근하지 못했다는 게 기후변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가 주요 계획과 개발사업 추진 시 기후변화 영향을 평가하는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그동안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들이 지적해 온 온실가스 스코프(Scope) 3에 대한 개념이 이번 기후변화영향평가에서 빠지면서 여전히 탄소중립의 완벽한 달성에는 부족한 법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모양새다.

◆숨은 온실가스, 스코프 3가 뭐길래?= 현행 온실가스 관련 제도에서는 배출 범위를 두고 스코프 1, 2, 3로 구분하고 있다.

사업장 등에서 연료를 연소하면서 직접 배출하는 ‘직접배출(스코프 1)’과 전기와 같이 사업장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간접배출(스코프 2)’은 배출권거래제도상에서 감축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전기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설비를 설치하는 등 사업장에서 배출량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스코프 3는 통제가 불가능한 간접배출을 의미한다. 우리가 제품을 생산하거나 건설 과정에서 사용하는 자재 등을 만들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일반적으로 스코프 3로 분류한다는 게 기후변화 분야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기후변화영향평가 등에서 인정하는 온실가스 범위는 스코프 1, 2까지다. 사실상 스코프 1, 2의 배출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산업 부문별로 다르지만 스코프 3가 스코프 1, 2 대비 더 많은 양이 배출되는 분야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건설이다.

건축물 공사 시 온실가스로 평가받는 항목은 현장에서 사용되는 중장비와 같은 스코프 1, 2에 속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것은 건설사업에 투입되는 자재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김경태 레오엔지니어링 대표와 김익 스마트에코 대표(세종대학교 겸임교수)가 국제학술지 MDPI에 공동으로 등재한 ‘한국 건설 프로젝트에서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량의 중요성 : 환경영향평가 및 제품가치사슬탄소규제(LCA) 사용’ 논문에 따르면 스코프 3를 포함한 건설현장에서의 연간 탄소배출량은 3만4034.9tCO₂e로 스코프 1, 2만 평가한 현장(1735tCO₂e) 대비 1861.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행 기후변화영향평가에서는 사실상 건설현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코프 3 부분의 온실가스를 평가하지 않아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한 전문가는 “단순히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라면 스코프 1, 2만 줄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 아닌가”라며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하면서 숨은 온실가스인 스코프 3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국제사회는 이미 가치사슬별 탄소규제 시행하는데=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코프 1, 2, 3 전반을 관리하는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탄소관리는 사업장별 온실가스 관리에 포커싱돼 있다.

대부분 대기업 등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 배출권거래제에 포함돼 있지 않은 소규모 사업장은 사실상 면죄부를 얻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소규모 사업장을 모두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측면도 있다. 보다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는 대규모 사업장 위주로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 한국의 탄소배출 관리에도 LCA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A라는 완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에서만 탄소배출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가치사슬 피라미드를 거슬러 타고 내려가면서 라이프사이클 전 과정에 걸친 온실가스 배출량의 총합을 A의 배출량으로 판단하는 게 LCA의 골자다.

이 제도는 이미 한국 기업들에도 익숙하다. 유럽에서 최근 발표한 탄소국경세 등이 이 같은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한국에도 비슷한 개념들이 자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태양광 모듈 제품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탄소인증제’와 환경부의 ‘환경성적표지·저탄소제품인증’,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함께 운영하는 ‘녹색건축인증’ 등이다.

탄소인증제는 폴리실리콘-웨이퍼-셀-모듈 등 태양광 모듈 생산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탄소배출량을 평가, 매년 상·하반기에 실시하는 장기고정가격계약입찰 등에서 입찰 배점에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탄소를 적게 배출한 친환경 자재가 사용될 수 있게끔 하는 제도다.

당장 환경부의 저탄소인증을 받은 음료수 PET들은 용기가 경량화돼 있어 두께가 상당히 얇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ET 제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가장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용기를 경량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자재의 경우에도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을 통해 녹색건축 인증을 받은 건축물에 법인세 절감과 용적률 향상 등 혜택을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저탄소 자재를 사용하게 되면 가점이 주어지기 때문에 1점 차이로 인증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환경부의 ‘환경성적표지·저탄소제품인증’을 살폈을 때 인증을 획득한 60~70% 정도가 건설자재로, 녹색건축인증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업계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건설 분야의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에 스코프 3까지 포함을 시킨다면 친환경 자재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다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온실가스 관리가 사실상 스코프 1, 2와 스코프 3로 투트랙이 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배출량이 많은 쪽에 집중돼 있었다”며 “최근 대폭 상향된 2030년 NDC가 발표되는 등 강력한 목표가 수립됐는데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온실가스를 더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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