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상반기 영업손실 1932억원…대규모 적자 예고
발전 5사 역시 하반기 경영실적 악화 전망 목소리
발전사 부채비율 지속 증가…숨겨진 폭탄 점점 커져
연료비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동결…전력산업계 부담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전력산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전력산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전기신문 윤대원 기자] 한전이 최근 발표한 경영실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 규모는 1932억원에 달했다. 전년 동기 대비 1조136억원이나 감소한 수치다. 전력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매출액이 4285억원 늘어났지만 연료비 증가 등으로 영업비용이 1조4421억원 늘어난 탓이다.

발전 5사 역시 대부분 작년보다 못한 실적을 들고 나왔다. 한국남동발전은 올해 상반기 47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작년 상반기 1116억원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한국중부발전도 지난해 1115억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436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 4억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한국남부발전은 오히려 217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냈으며, 그나마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동서발전이 작년보다 나은 실적을 보였다.

올해 하반기는 더 좋지 않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발전 5사의 경우 그나마 남부발전을 제외하면 모두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하반기에는 적자를 예상하는 반응이 많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을 받아 하반기 계통한계가격(SMP)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나머지 여건이 이 같은 상승세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발전 5사는 정부의 석탄총량제를 자율적으로 도입, 15~20% 정도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낮추고 있다. 올 여름 부족한 전력예비율을 해소하기 위해 석탄화력까지 풀가동했던 것과 비교해 전력판매량 자체가 줄어들면서 큰 폭의 매출 하락이 전망된다.

또 정부 비용평가위원회가 올해 상반기까지 1로 적용했던 정산조정계수를 발전사 실적에 따라 0.38~0.7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한전의 원가회수율이 90%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올해 연말까지 7조원 수준의 누적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산조정계수를 하향해 발전사에서 발생할 수익의 일부를 한전으로 돌리고,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발전 5사와 나누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최근 전력산업계의 경영위기를 두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을 둔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연료비에 따라 전기요금을 적용하는 연료비연동제를 지난해말 시행했지만, 2·3분기 전기요금을 모두 동결하면서 연료비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최근까지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한전과 발전사는 해마다 거둬들인 전기요금을 나눠갖는 형태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즉 정해진 파이 속에서 누군가 수익을 많이 올리면, 그만큼의 손해를 보는 곳도 발생하는 제로썸 게임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연료비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이 보조를 해주지 못하다 보니 한전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또 여기서 발생하는 손해를 발전사에 연대책임을 지게하는 그림이 나온다는 얘기다.

이처럼 연이은 발전사의 적자로 인해 전력산업계의 숨겨진 폭탄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것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발전 5사의 부채비율이다.

그동안 발전 5사가 기록한 적자와 함께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인해 발전사들의 부채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중부발전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2016년 157.40% 정도의 부채비율을 보인 중부발전은 대형 건설사업 등의 영향으로 인해 타 발전사 대비 부채비율이 심각하게 급증했다.

이로 인해 2017년 168.25%, 2018년 192.08%의 부채비율을 보였고, 2019년부터 200%를 넘어 228.74%(2019년), 253.39%(2020년)를 찍었다.

일반적으로 공기업의 부채비율이 200% 이하면 정상적으로 경영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200%를 훌쩍 뛰어 넘은 것.

다른 발전사들 역시 2016년 부채비율 수준을 유지 중인 동서발전을 제외하면 모두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모습이다.

발전사들의 신용등급이 국가 수준인 AAA로 높고 대부분 부채비율이 200%를 넘지 않아서 문제가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과 같이 악화된 경영 환경 속에서 적자가 지속된다면 부채비율 역시 줄기는커녕 계속해서 늘어나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의 탈석탄 정책으로 발전사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들이 연이어 폐지될 상황이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당장 오는 12월 호남화력 1,2호기가, 내년에는 울산화력 4~6호기가 폐지된다. 2034년까지 총 30기의 석탄화력발전이 문을 닫는다.

발전 5사의 경영환경이 올해보다 개선되기는 커녕 더 악화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때 발전 5사의 부채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결국 큰 폭탄이 돼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몇 년 사이에 발전 5사 가운데 일부가 매물로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탈석탄으로 인한 수익 감소, 지속적인 적자로 인해 사실상 경영을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에너지정책의 성공에는 발전 5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풍력 발전과 같이 큰 사업비가 필요한 분야에서 발전 5사의 참여가 두드러질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적자 기조 속에서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발전 5사의 어려움에 대해 원인을 콕 찝어서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최우선적으로 해소돼야 할 것은 전력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것”이라며 “현재로썬 정부가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의 부담을 자꾸만 다음 정부로 넘기려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큰 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또 “발전사의 실적 부진이 발전사가 경영을 잘못해서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다보니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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