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이제는 탄소중립이 글로벌 표준이 되고 있다. 이미 탄소중립 계획을 선언한 국가는 EU, 미국, 일본, 중국 등을 포함해 120개를 넘어서고 있으며, 구글, 아마존, 소니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 역시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작년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하고, 적응, 기회, 공정, 기반이라는 3+1 실행전략과 구체적인 10대 과제를 발표하였으며, LG화학, 포스코 등 대기업도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6억톤이 넘는 국내 탄소 배출량을 30년 안에 순배출량 0으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은 상당한 노력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구조, 높은 에너지집약 산업 비중, 높은 석탄발전 비중과 낮은 재생에너지 효율, 선진국 대비 배출정점 이후 탄소중립 달성시점까지의 짧은 기간 등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내 여건은 현재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목표와 현실과의 괴리를 인정하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사회, 경제 전 분야에 걸쳐 추진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부처 간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권한과 역할분배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상위 조정기구, 예를 들면 곧 출범할 탄소중립위원회의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역할분담 방안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해당 거버넌스는 일방적 하향식이 아닌 상하향식 방식을 조화시켜 여러 세부 분야별 탄소중립 전략들 간의 정합성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둘째, 탄소중립 기술개발에 대한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현재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며, 이러한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이 시급히 요구된다. 그러므로 예산 배정 등과 같은 자원투입에서 탄소중립 관련 기술개발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고 기술개발 및 적용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또한 실행계획에서 고려되는 여러 가지 기술들은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에 구애받지 말아야 하며, 특정 기술이나 수단이 원천적으로 선택 혹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경로는 산업경쟁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현재 많은 주요 산업이 탄소중립 추진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고 심지어 퇴출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며, 따라서 정부는 둘째 원칙에서 제시된 기술혁신의 결과가 신산업 창출 및 기존 산업의 성공적 적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탄소중립 추진에 따른 기존 산업의 피해비용(매출, 수출, 고용 등)과 산업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및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나타날 새로운 산업구조에 기존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인센티브와 출구전략이 정책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넷째,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 탄소중립 추진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 모두가 부담하게 될 것임을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탄소중립 추진 시 소요되는 비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관련 비용을 누가 지불하고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한 후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과제는 선언 그 자체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실현되는 것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한다. 2050 탄소중립이 이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로 구현되기 위해 효율적인 거버넌스 구축, 과감하고 신속한 기술혁신 지원, 산업경쟁력 유지 및 강화, 투명한 비용부담의 원칙을 기반으로 우리 모두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이종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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