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송세준 기자]

○…수사학(修辭學)을 의미하는 레토릭(rhetoric)은 웅변을 뜻하는 그리스어 ‘레토레(retore)’에서 유래했다. 초창기에는 시민 법정에서 청중이나 배심원의 마음을 사기 위한 변론 기술로 시작했다. 레토릭하면 설득의 달인인 소피스트(Sophist)가 연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귀족들은 체제 유지에 필요한 교양이자 학문으로 레토릭을 배웠다. 논리학, 문법, 레토릭을 세 개의 학문, 즉 트리비움(trivium)으로 규정했다.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레토릭과 관련이 있다.

소피스트 중 하나였던 소크라테스는 레토릭이 진실 추구와는 무관한 변론술, 혹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그는 레토릭을 지렛대로 삼아 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에 천착했다.

오늘날 레토릭이 단순한 말장난이나 허풍, 궤변으로 치부되며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중세시대 영향이 크다. 신학의 시녀로 전락하며 수사학의 장식법(말을 수식하고 장식하는 수단)이 도드라진 탓이다.

우리의 경우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수사학을 장식법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말은 화자(speaker)에서 출발해 청중(listener)과의 교감을 거쳐 사회(world)로 번져 간다.

과거 웅변의 시대에 그랬다면, 지금은 SNS에서 뉴스피드나 트윗, 해시태그로 출발해 팔로워와의 피드백을 거쳐 세상으로 퍼진다고 하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청중이든 팔로워든 역사적으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언어를 구사한 사람들이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데 다툼의 여지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얼마 전만 해도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의 추락은 꽤 흥미롭다.

그가 한순간에 사고뭉치로 전락한 것은 비트코인·도지코인 등 가상화폐를 둘러싼 그의 ‘입방정’ 때문이다.

올 초만 해도 “비트코인은 좋은 것”이라며 15억달러(약 1조6800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더니 최근엔 반(反) 비트코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채굴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된다는 이유로 비트코인을 통한 테슬라 결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몇 안 되는 거대 채굴 회사들에 의해 지배된다고도 했다. 반면 밈코인(Meme; 내재가치가 없는 장난코인)의 하나인 도지코인을 띄우는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쉬지 않는 머스크의 트윗에 가상화폐 시장은 랠리와 폭락을 반복하며 그야말로 쑥대밭이 돼 버렸다. 월가에선 그의 발언이 주식시장에서 중범죄에 해당하는 시세 조종이란 지적도 나온다.

원대한 상상력과 비전을 설파하던 머스크의 ‘입’은 양치기 소년에 비유될 만큼 신뢰를 잃고 테슬라의 새로운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의도를 떠나 그의 레토릭은 결과적으로 대실패했다.

한 줄의 트윗, 하나의 단어, 말과 레토릭이 주는 영향력과 무게감을 상기시키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사례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말이 무서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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