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주도권 가져오려면 전략과 정책 역할 중요
원전산업 회생 마지막 찬스
서균렬 교수 “부지선정위 설립 부지부터 못 박아야 정부 관심 없으면 공염불”
정범진 교수 “원전 신기술 맞춘 규제기준 새로 만들어야…원안위 적극 참여 필요”

최근 시장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뉴스케일 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최근 시장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뉴스케일 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전기신문 윤대원 기자] 소형모듈형원자로(SMR)는 원자력 르네상스를 가져올 수 있을까.

원자력 업계의 관심이 최근 SMR에 집중되고 있다.

안전 문제로 인해 국민들의 외면을 받아 온 원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산업 활성화를 위한 구원투수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원전 수출 분야에서 협력키로 하면서 업계 일각에서는 SMR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해외 각 국에서 SMR을 차세대 원전기술로 점찍고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하고 있어서다. 이번 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원전 협력 논의에도 SMR 기술 협력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SMR은 전기 출력 300MWe 이하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시킨 원자로다. 주요기기를 하나로 합쳤기 때문에 대형사고 가능성을 원천 제거할 수 있어서 원전 이슈 중 하나인 ‘안전’ 분야에서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는다.

공장제작, 현장조립이 가능하며 소형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분산형 전원 구축에도 적합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소생산, 해수담수화 등 전력생산 이외의 산업에도 다양하게 접목할 수 있으며 안전성을 특히 강화한 원자로로 잘 알려졌다.

캐나디안 SMR 로드맵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SMR 시장은 오는 2035년 65~85GW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같은 대규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현재 한국,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서 70종 이상의 SMR 노형을 개발 중이다.

한국은 지난 2012년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중소형일체형원자로(SMART)를 통해 SMR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전기술이 개발 중인 BANDI-60S, UNIST의 URANUS, 서울대학교의 REC-10, 카이스트의 ATOM 등 다양한 노형이 개발되고 있다.

이처럼 SM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은 이 시장에서 아직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도는 물론 전략 측면에서도 뒤쳐진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SMR을 침체된 원전 산업의 구원자로 여기고 있지만, 현 정부의 원전 정책 수정을 통해 SMR 개발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사실상 원전 산업 회생을 위한 골든타임도 끝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내비치고 있다.

◆“SMR 주도권 다시 쥐려면 부지부터 못 박아야”=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미국의 뉴스케일(Nuscale) 원전이 SMR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사업화에 다가가고 있는 모델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술성과 사업성 측면에서 평가했을 때 현재 가장 앞서있는 노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연순환 개념으로 설계된 뉴스케일 노형은 지난 2020년 8월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5~7년 사이에 상용화 가능한 노형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

미국은 원자력 정책에 정부와 정치권이 손잡고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특히 그동안 원전에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해 온 미국 민주당이 원전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미국 민주당 출신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에 포함하는 공약을 발표하는 등 전방위적인 원자력 산업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이 초당적으로 협력한 가운데 지난 2018년 원자력혁신역량법(NEICA)을 제정한 바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Nuclear Energy Innovation and Modernization Act (NEIMA)를 2019년 1월 승인하기도 했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는 해외 신규원전 사업에 자금지원을 금지하는 현행 규정을 지난해 폐지한 바 있다.

SMR이 미국에서 빠르게 사업화에 다가가고 있는 배경도 이 같은 정책적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간 유래없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 SMR 원천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미국의 독주를 두고 국내 원자력 전문가들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복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과거 SMR 분야에서는 한국이 독보적으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하는 스마트 원전이 이미 지난 2012년 7월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으며 세계시장을 리드했지만, 시범사업을 수행할 부지 확보에 실패하면서 주춤하는 사이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로 국내에서 원전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치면서, 스마트원전 사업을 수행할 부지를 국내에 확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원자력연구원 등은 해외기관과 손 잡고 해외에 시범사업 추진을 타진했지만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원자력 업계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SMR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여·야가 공동으로 국회 SMR 포럼을 창립하는 등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가 나서지 않고는 힘을 받기 어렵다는 것.

당장 SMR 사업의 주도권을 쥐려면 강한 행동력과 전략이 동반돼야 한다는 얘기다.

서균렬 교수
서균렬 교수
이를 두고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금이 SMR 세계시장 선점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이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우선 SMR 부지선정위원회를 즉시 설립해 국내에 SMR을 건설할 수 있는 부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당장 정부가 부지부터 못 박아놓고 사업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만 SMR이 국내에서 현실화 될 수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 개발 중인 SMR보다 앞서려면 우선 확실히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선 국회에서 아무리 포럼을 만들고, 산업계가 SMR 개발에 열을 올린다고 해도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실적 규제기준 필요…원안위 역할 중요”=원자력 전문가들은 또 SMR 개발을 위해 원전 규제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규제 대부분이 대형원전을 중심으로 형성돼있는 만큼 소형원전에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한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신규 원전 인허가는 원자력안전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 소형원전은 기존의 대형 원전에 비해 소형화, 단순화 및 피동화 등의 설계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게 원자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기존 대형 원전에는 없는 새로운 개념, 기기 및 계통 등이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규제 상에는 이 같은 새로운 개념을 반영하기가 어렵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원자력안전법 예하의 ‘원자력안전위원회 규칙’에 명시된 적용 예외 조항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업계에서는 별도의 기술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예외사항을 하나하나 검토한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업계는 우선 SMR에 대한 별도의 기술기준을 신설하고 필요시 안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에도 뉴스케일 노형 개발과 함께 규제기관인 NRC에 기존 인허가 규정을 적용하기 어려운 15개 조항에 대한 면제를 요청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상용 경수로와는 설계 특성이 전혀 다른 노형의 규제 기준을 합리화했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규제기관인 원안위의 협조가 어느때보다 절실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SMR 시장은 먼저 개발에 성공하는 사람이 유리한 타임-투-마켓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지금 기술개발과 함께 규제기준 개발이 투트랙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범진 교수
정범진 교수
지난 4월 열린 국회 SMR 포럼에서도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SMR의 성공은 규제에 달렸다”라며 “SMR과 같은 새로운 원자로형에 대한 안전성 확인은 기존 대형원자로의 안전성 확인 절차의 연장선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원자로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정 교수는 “미국 NRC는 뉴스케일에 다양한 규제를 면제해주면서 개발에 힘을 보태는데, 우리 규제기관은 아직까지도 기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며 “SMR을 개발할거면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규제기관의 입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규제기관의 보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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