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송세준 기자]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아직도 변압기하면 ‘효성’을 떠올린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주도한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을 계기로 10년 넘게 국내 고압 사업은 효성중공업으로 사실상 일원화됐기 때문이다.

나홀로 독주는 아니었지만, 전선하면 ‘대한전선’을 떠올리는 이유도 비슷하다. 대한전선은 1950년대 재계 4위의 우리나라 대표기업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10위 안에 포진했다. 훗날 대우신화도 1983년 대한전선의 가전사업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한전선이 만든 ‘디제로’ 텔레비전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무지개’ 세탁기, ‘원투제로’ 냉장고는 생활가전을 대중화했다.

대한전선의 모체는 1937년 설립된 조선제련㈜ 시흥전선제작소다. 1941년 조선전선으로 사명을 바꿨다. 창업주인 고(故) 인송 설경동 회장은 1955년 조선전선 시흥공장을 불하받아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대한전선을 창립했다. 이후 대한전선은 2008년까지 무려 54년 동안 연속 흑자 행진을 벌였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알짜 기업, 유보금이 많은 우량 기업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듯 50년 넘게 쌓아 온 대한전선의 성공신화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무적 위기 속에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지난 2015년 M&A 시장에 나온 대한전선을 사모펀드 프라이빗에쿼티(IMM PE)가 인수하는데,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감안하면 재매각은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그리고 6년째인 올해 대한전선의 새 주인은 호반그룹으로 결정됐다.

경영권 안정 측면에서 사모펀드와 호반그룹은 무게감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호반그룹은 재계에서 무차입 경영으로 소문난 알짜 기업이란 점에서 전성기 시절의 대한전선과 꽤 닮았다.

핵심인 호반건설은 1989년 설립돼 초고속성장을 질주, 재계 4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한 젊은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마침 대한전선도 확실한 실적 턴어라운드를 통해 제2의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유동성 위기가 시작된 2009년 이후 가장 좋은 실적을 내자마자 새로운 주인을 찾은 타이밍도 절묘하다.

대한전선은 최초, 최고로 꼽히는 수많은 제품을 탄생시키며 전력산업과 호흡을 함께해왔다.

대한전선이 만든 플라스틱 절연 심지선은 1966년 국내 최초 실용신안을, 1970년 국내 첫 KS를 획득했다. 지절연 통신케이블(1961년), 가공송전선(1970년), 154kV OF 초고압케이블(1978년), 원자력발전소용 케이블(1981년), 폼스킨 통신케이블(1983년), 154kV XLPE 초고압케이블(1984년) 등 대한전선이 보유한 최초 타이틀은 일일이 세기가 힘들다. 2019년엔 ‘500kV급 전력케이블 시스템 설계·제조기술’이 전력 제조분야 최초의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대한전선의 역사가 곧 전선산업, 전력산업의 역사인 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전선의 부활을 응원하는 것도 과거 기술 국산화를 이끌었던 주역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택사업이 주력인 호반건설과 토목사업이 주력인 호반산업이 우리나라 전선의 대명사격인 대한전선과 발휘할 시너지 효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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