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송세준 기자]

○…1990년 10월, 노태우 정권이 선언한 ‘범죄와의 전쟁’은 국면전환용 성격이 짙었다.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사찰이 폭로되자 전국적인 규탄 집회가 연일 이어졌다. 위기감을 느낀 집권세력은 정국 전환용 카드로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꺼내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범죄와의 전쟁’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민생치안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지를 받았고 사회악에 대한 강력한 공권력 행사 사례로 남았다. 실제 1000명이 넘는 조직폭력배가 대거 소탕됐다.

청불 등급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년作)’이 500만명에 육박하는 흥행에 성공한 것도 싸늘하고 폭력적인 그 시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한몫 했다. 물론 명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흥행몰이의 가장 큰 이유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범죄와의 전쟁’이 등장했다.

LH 직원이 연루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고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자 정부는 ‘전쟁’을 꺼냈다.

3기 신도시를 둘러싼 투기 의혹은 그동안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나 간혹 나오던 아파트 투기 수준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전 국민적 허탈감과 분노는 당연한 수순이다.

○…이번 사태는 지우고 싶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우리사회 투기의 역사를 추억하게 만든다.

사전적 의미의 투기(投機)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이 오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실물 자산이나 금융 자산을 구입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투자(投資)와 같다. 다만 방법적으로 투자는 생산 활동을 통한 이익을, 투기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는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투기로 발생한 이익은 불로소득이다.

소비재 경공업으로 출발한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질주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서울시 인구분산정책(한강 이북 40%, 이남 60% 목표)의 하나로 추진된 강남개발은 전차의 속도를 높이는 터보급 엔진이었다.

1969년 말 완공된 제3한강대교(한남대교)와 1970년 7월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본격적인 강남 개발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됐다.

1966년 영동(영등포의 동쪽이란 의미)개발계획이 발표되자, 온통 논밭뿐이던 말죽거리가 들썩이고 강북의 부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투기의 대명사격인 복부인(福婦人)이란 신조어도 이때부터 등장했다.

강남 개발 이익을 얻기 위한 투기는 토지에서 시작돼 70년대 중반부터 아파트로 확장됐다. 70년대는 한마디로 복부인의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제자리에 있던 땅은 잘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욕망과 결합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예나 지금이나 개발 있는 곳에 돈이 몰려다녔다. 미리 얻은 정보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기는 무리들도 늘 존재했다.

투기와 관련한 대표적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으로 꼽히는 1991년 수서비리와 2000년대 분당 파크뷰 게이트도 그랬다.

시차만 있었을 뿐, 땅 투기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제대로 뿌리 뽑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3기 신도시 사태에 대한 수사나 처벌이 과거처럼 흐지부지 끝난다면, 국민적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탐욕이라는 이름의 고장난 전차’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공동정범으로 지목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투기로 돈을 벌고, 권력을 쟁취하고 땅을 통해 부를 세습하는 사회가 결코 우리의 지향점은 될 수 없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