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가격 앞세운 세계시장서 범용제품으론 경쟁 절대 불가
“변하지 않으면 깨진다” 美 컨설팅기관 경고 여전히 유효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쉽지는 않지만 R&D와 제조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남구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출 컨테이너 화물(제공=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쉽지는 않지만 R&D와 제조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남구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출 컨테이너 화물(제공=연합뉴스)

강대국과 개도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어려움을 겪는 ‘넛 크래커(호두까기기계)’ 상황은 2021년을 맞은 한국 기업들의 여전한 숙제다.

‘넛 크래커(nut cracker)’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국내 기업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에는 엔화 약세와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회복으로 기운을 차린 일본 기업과 기술력·구매력을 갖춘 중국 기업 틈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국내 기업을 뜻하는 ‘신(新) 넛 크래커’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30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대표기업의 경영성과는 해외 글로벌기업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은 세계 경기가 회복된 2015년 이후 모두 개선됐지만 한국 대표기업들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수량기준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2020년 3분기 기준)은 삼성전자(21.9%), 화웨이(14.1%), 샤오미(12.7%), 애플(11.9%) 순이지만 이익점유율은 애플이 60.5%로 삼성전자(32.6%)의 두 배에 달한다.

‘넛 크래커’ 상황은 국내 전기·에너지 분야 기업들도 예외일 수 없다.

정부의 그린뉴딜·디지털뉴딜과 관련된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신재생 업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미·중 무역 분쟁과 환율 등의 영향으로 인해 ‘넛 크래커’ 신세를 탈피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탈원전 흐름의 가교역할을 할 LNG발전의 가스터빈도 아직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에 따라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풍력발전 시장 역시 대형화를 실현하지 못한 국내 기업 대신 글로벌 업체들의 잔치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국내 공기업, 공공기관이 보유한 태양광발전 설비의 절반 이상에서 중국산 셀(cell)을 쓸 정도로 국내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전통적인 전기업종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여전히 일본의 굴레와 중국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기술발전이 더딘 전통 전기제조업은 1960~1970년대의 일본 기술이 아직도 국내 제품의 근간을 이룰 정도다. 가격경쟁력 역시 중국산 앞에서는 절대 열위(劣位)다. 조명을 비롯한 저압 전기 기자재의 경우 업체 간 치열한 출혈경쟁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중국산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없다.

원자재 수급부터 국내 시장이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반전을 도모해야 한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성능을 가진 범용제품을 팔아서는 승산이 없다. 국내 시장만을 염두에 둔 ‘우물 안 개구리’ 전략은 필패(必敗)의 다른 이름이다.

본지가 전기 제조업도 ‘고부가가치 제품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Make for premium)’는 명제를 제안하는 이유다.

가스터빈 국산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GIS 업계가 친환경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 것도, 조명업종이 살균·공기청정 조명을 선보이는 것도, 저압차단기 업체들이 스마트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도 결국 부가가치를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외침의 한 단면이다.

지난 1998년 ‘한국보고서-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통해 넛 크래커 위기에 빠진 한국 상황을 놓고 “변하지 않으면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지적한 미국 컨설팅 기관인 부즈 앨런 & 해밀턴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본지는 올해 ‘Make for premium’을 주제로 다양한 분석·기획보도를 통해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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