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공간 제약 ‘훌쩍’…원격검사로 조작 우려 ‘NO’

한전 자재검사처, 영상통화 기술 활용 원격검사 시행
‘에너지밸리 1호 기업’ 보성파워텍, 시범운영사 선정

코로나19로 부상한 ‘언택트(비대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산업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2021년까지도 여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운영방식을 혁신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전 또한 선제적으로 언택트 적용에 나서고 있다. ‘납품시험의 원격화’가 그 출발점이다. 한전 자재검사처는 2020년 11월부터 ‘영상통화 기술을 활용한 장시간 소요 시험항목 원격시험’의 시범운영에 돌입했다. 전남 나주 에너지밸리 등 원거리 소재 기업이 증가한 데다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출장검사가 어려워지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검사방식 혁신에 나선 것이다. 자재검사처는 우선 원거리 소재 2개 개폐기 업체를 대상으로 가스누설 등 장시간 소요 항목을 시험하며 이후 변압기·전선 등 타 품목까지 확대 적용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시범운영기업으로 선정된 보성파워텍(대표 임재황)의 나주 에너지밸리공장을 찾아 2020년 마지막 원격납품시험을 직접 살펴봤다. 2시간가량 진행된 시험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전을 비롯한 국내 전력산업계가 나아갈 방향성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열차로 2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나주역에서 또 차로 10분. 마침내 들머리를 통과하자 54만평(약 178만평㎡) 부지의 너른 산업단지를 빼곡히 채운 공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내 전력산업계의 메카로 자리 잡은 나주혁신산단(에너지밸리)의 모습이다. 에너지밸리는 나주혁신산단을 포함해 ▲나주신도일반산단 ▲광주도시첨단 ▲광주도시첨단 국가산단 등 총 4개 산단을 아우르는 말로 2020년 11월 기준 501개의 기업이 입주해있다.

국내 중전기업계에서 가지는 위상도 적지 않다. 한전에 개폐기류 공급자 유자격이 등록된 40여 개의 기업 중 16곳이 에너지밸리에 터를 잡고 있다. 사실상 직접 공급이 가능한 기업 전체가 입주해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잘 구획된 포장도로를 따라 산단 중심부로 들어서자, ‘에너지밸리 1호 기업(협약·착공·투자)’이라는 큰 간판이 시선을 잡아끈다. 2021년 창사 51주년을 맞은 국내 중전기 전문기업 보성파워텍의 나주 에너지밸리공장 전경이다.

보성파워텍은 한전 자재검사처가 운영에 돌입한 ‘영상통화 기술을 활용한 장시간 소요 시험항목 원격시험’의 개폐기류 시범운영사로 선정돼 총 2번의 시험을 진행했다.

2020년의 마지막 시험이 예정된 12월 17일, 나주 에너지밸리공장을 방문했다. 넓찍한 주차장을 지나 공장동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납품을 앞둔 가스개폐기 8대에 대한 원격시험 준비가 한창이다.

“보안코드 XXXX.” 안성수 보성파워텍 차장이 손에 든 스마트폰 스피커로 한전 자재검사처 검수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직원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보안코드 확인했습니다.” 안 차장이 답변 후 원격검사 전용 소프트웨어에 코드를 입력하자 스마트폰 화면은 영상촬영모드로 전환, 시험장 전경을 비추는 노트북 화면과 스마트폰, 한전 검사관의 화면이 삽시간에 동기화된다.

“영상통화 기술을 통하면 검사관의 현장방문 없이도 원격으로 검사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노트북에 설치된 웹카메라로 시험장 전경을 비추고, 스마트폰으로 가까이에서 촬영을 하면 조작의 우려도 없죠. 오늘까지 3회차 시험을 진행하다보니 점차 원격검사에도 적응이 돼 가는 것 같습니다.”

박정훈 보성파워텍 사원이 보안코드 확인 후 동기화된 스마트폰으로 시료(제품)를 촬영하며 한전 자재검사처 검수관과 실시간으로 정상동작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박정훈 보성파워텍 사원이 보안코드 확인 후 동기화된 스마트폰으로 시료(제품)를 촬영하며 한전 자재검사처 검수관과 실시간으로 정상동작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자재검사처가 고안한 원격시험은 웹카메라와 PC간 원격제어기술을 통해 이뤄진다. 시험 대상 업체가 웹카메라 2대로 시험전경과 시험기기의 계측값을 동시에 측정·송출하면 한전 검사담당자가 PC 원격 접속을 통해 시험검사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화면 동기화 및 실제 시험준비가 마무리되고 보성파워텍 직원 4명이 가스개폐기 앞에 나란히 선다.

첫 번째 시험항목은 ‘무전압개폐시험’이다. “10회 동작시험 시작!” 이내 시험 개시를 알리는 구령이 울려퍼지자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가스개폐기의 투개방 횟수를 카운트하기 시작한다.

“XXX번 카운터를 가까이서 비춰주시겠습니까?” 시험 중에도 스마트폰을 통한 실시간 소통은 계속된다. 시험화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검수관이 세부내용 확인을 요청하자, 안 차장은 곧장 해당 제품으로 다가가 요청사항을 수행한다.

상용주파 내전압시험에 이어 샘플시험까지 연이어 진행됐다. 직원들은 검수품배치상태를 해제하고, 공간을 정리한 뒤 샘플시험모드로 전환, 다음 시험을 준비한다.

안 차장은 “샘플시험의 경우 검수관이 요청한 제품으로 진행한다”며 “한전의 샘플링 프로그램을 통해 임의선정된 제품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진행해 시험의 신뢰성과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1시간 여에 걸쳐 샘플시험으로 진행되는 ▲부분방전(PD)시험 ▲시스템(원격동작)시험 ▲주회로 저항측정 ▲제어회로내전압시험 등이 완료되고 도장시험·가스누설시험 등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원격시험의 가장 큰 이점으로 꼽힌 것은 바로 가스누설시험이었다. 해당시료(제품)를 비닐로 봉인하고 72시간 뒤 누설여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검수관이 재차 공장을 방문해야 하는 등 애로가 많았던 시험항목이다. 그러나 원격시험이 도입됨에 따라 72시간동안 실시간 중계 혹은 동영상촬영으로 시험장을 모니터링하고, 이후 결과값만 확인하면 되는 방식으로 간편히 개편됐다. 자재검사처와 시험 대상 기업 모두에 시간·비용 절감의 효과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미니 인터뷰)서명석 보성파워텍 에너지밸리공장장

준비된 ‘에너지밸리 1호’ 기업 책임감・보람 갖고 시험에 임해

서명석 보성파워텍 에너지밸리공장장(상무)은 중전기기 분야에서 30년 이상 경험을 쌓은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2018년 나주 에너지밸리공장장으로 부임한 그는 보성파워텍의 중전기기 사업의 발전을 촉진해왔다.

서 공장장은 보성파워텍이 이번 한전 자재검사처 원격시험의 시범운영사로 선정된 배경으로 에너지밸리 1호 입주기업이라는 상징성과 중전기기 전품목을 구비한 품목 다양성을 거론했다.

그는 “선제적으로 원격시험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부담감도 느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준비된 ‘에너지밸리 1호’ 기업으로 앞으로 새로운 제도가 자리잡는 데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책임감과 보람을 갖고 시험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재검사처의 원격시험은 단기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중소제조기업의 현장애로를 효과가 있음은 물론, 향후 한전과 중전기기업계가 ‘언택트(비대면)’ 기술을 빠르게 현장에 접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에너지밸리를 비롯해 지방 소재 기업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 한전 자재검사처가 코로나19 속에서 전국 기업을 책임지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이 가운데 영상통화를 중심으로 한 언택트 기술을 시험검사에 적용하면 한전과 기업 모두 ‘윈윈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짚었다.

에너지밸리의 초기 형성단계부터 중흥기까지 모두를 경험한 서 공장장은 국내 전력산업계의 진일보를 위한 확대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밸리 입주사가 501개에 달하면서 산단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인력수급의 어려움, 정주여건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에너지밸리, 더 나아가 국내 전력산업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역제한 입찰 외에 입주기업 가점 등 지원책을 확대하고 인력공급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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