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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력정책 산증인’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박사
“에너지문제 정치논리에 자괴감…전문가 의견 더 경청해야”
전력경제 분야 1세대로 전기연 38년 근무 퇴직 앞둬
FIT・RPS・DR시장 직접 설계 전력수급계획 18년간 참여
적정 포트폴리오・탄소중립 위해 원전 20% 수준 유지해야
계시별 요금제, 주택용보다 상업용에 더 필요한 제도
정형석 기자    작성 : 2020년 12월 22일(화) 22:47    게시 : 2020년 12월 22일(화) 22:50
“국내 전력 산업에서 전력경제라는 개념이 생소할 때 연구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8년이 흘렀네요. 최근 에너지 문제가 정치 이슈가 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싸우는 것을 보면 정말 전력정책을 오래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듭니다. 정부와 국회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많이 경청했으면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국내 전력경제 분야 1세대인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박사는 수요전망부터 수요관리, 수요자원, 신재생에너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이르기까지 전력정책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경제학 박사인 그는 1982년 공학도가 주류인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한국전기연구원)에 입사한 이후 거의 40년간 전력경제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 왔다.

1955년생인 이 박사는 원래 2016년 정년퇴임이지만 우수연구원으로 뽑혀 정년이 65세로 연장되면서 결국 올해 말 연구원을 떠나게 됐다.

눈이 내린 지난 12월 18일 오전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지난 38년의 소회와 함께 앞으로 전력산업과 전력정책의 나아갈 방향에 관해 들어봤다.



▶전기연구원 하면 공학박사들만 있는 곳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전기연구원에 입사하게 된 배경은.

“사실 1982년 입사 당시 전기연구원의 명칭은 한국전기통신연구소였다. 연구소라고는 하지만 기능도 연구보다는 시험기관에 가까웠다. 하지만 연구기능을 확대하기 위해 재료 등 다양한 분야의 공학도와 경제학 전공자를 대거 뽑았다. 그 덕분에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나도 연구소에 입사하게 됐다. 당시 전기 분야에서 전력경제와 전력정책이라는 개념은 생소했다. 그런데 연구소에 와보니 통신 쪽은 이미 관련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어 놀랐다.”



▶전기연구원에서 전력경제를 연구한다는 게 낯설다. 주로 어떤 연구들을 수행했나.

“제대로 된 연구는 1988년 전력정책연구실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주로 한전의 수탁과제 용역을 수행했다. 수요예측도 하고 전력수급모형도 연구했다. 우리나라는 불과 몇 년 전부터 수요자원이라는 개념이 생겼는데 미국은 1990년대부터 이미 공급자원뿐만 아니라 수요자원을 고려한 수급모형을 만들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민간발전사업자들이 하나 둘씩 시장에 들어오면서 전력구매계약(PPA) 요금을 설계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때 회피비용이라는 개념도 처음 도입됐다. 90년대 말부터는 전력공급 부족으로 수요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에너지공단과 함께 수요관리(부하관리) 연구도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중요해지면서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제도를 설계했다. 또 최근에는 수요자원과 분산전원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면서 수요자원(DR) 시장 설계와 분산전원 편익산정과 중개거래 시장 연구도 수행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참여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급계획 무용론도 나온다.

“1997년부터 2015년까지 모든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관여했다. 과거 통합 한전 시절에는 산업부와 한전이 장기전력수급계획을 수립했는데 4~6차 설비분과 위원으로 참여했다.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에는 산업부와 전력거래소가 2년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1~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책, 설비, 수요분과에 참여했다. 사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전력설비가 부족할 때 필요한 것이다. 원자력과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려면 최소 5~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미리미리 부지를 선정해 발전소를 건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력수요도 별로 안 늘어나고 가스발전소와 신재생에너지발전설비만 건설하는 것이라 더이상 설비계획은 필요가 없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력수급계획을 짜지 않는다. 이제는 송배전망, 계통계획만 수립하면 된다고 본다.”



▶최근 한전의 신재생발전 사업 참여 논쟁이 시끄러운데.

“한전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한전의 신재생발전 사업 참여를 비판하고 싶다. 우선 공기업인 한전이 더 이상 전력 산업 생태계를 지배해서는 곤란하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전력 산업이 클 수가 없다. 한전 퇴직자들이 발전, 제조, 시공 분야를 점령하는 상황에서 국내 전력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시장이 만들어지면 민간 대기업들이 시장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이유는 바로 공기업이 관리한 게 아니라 시장에 맡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법적인 문제다. 현행 전기사업법상 발전과 판매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지금 법 개정을 추진 중인데 법을 개정하려면 아예 발판겸업을 허용해야 한다. 또 한전은 이미 발전자회사들을 통해서 신재생발전사업을 하고 있다. 한전이 신재생발전 사업을 하려면 이번 기회에 발전사들의 RPS 의무량을 다 가져가야 한다.”



▶그렇다면 전기사업자인 한전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나.

“독일의 E.ON, RWE, 프랑스 EDF, 이탈리아의 Enel 등의 전력회사도 발전사업을 한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판매시장을 개방해 자유롭게 판매도 하고, 발전도 하고 있다. 그래서 한전이 발전사업을 하려면 당연히 판매시장도 개방돼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는 전기사업자들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점이다. 소규모 자가발전이 늘고 중개거래를 하는 가상발전소(VPP)가 증가하면서 이제는 전기사업자는 스마트하게 망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전도 송배전망을 보다 스마트하게 운영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시작한 지 20년이 된다. 바람직한 전력산업의 형태는.

“전력산업구조개편의 본래 목적대로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국민편익을 위해선 지금처럼 한전이 판매시장을 독점하고 낮은 요금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체제에서는 전력산업의 미래도 없고 고용도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국민편익과 요금은 별로 관계가 없다고 본다. 국민들은 더 이상 요금 몇 천원 더 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국민들을 선동해서 경쟁체제가 되면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부추겨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전력산업의 수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글로벌 기업이 나오고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과거에는 한전이 통신공사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통신시장이 개방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한전보다 SK, KT, LG 등의 통신사가 더 커졌다.”



▶지난 12월 17일 환경비용과 연료비연동제 도입, 주택용 계시별 선택요금제 등을 골자로 한 전기요금 체계개편이 이뤄졌는데.

“RPS 제도를 처음 설계할 당시 이미 신재생 부담금을 전기요금 고지서에 분리해서 고지하도록 했었다. 진즉부터 했어야 했다. 연료비연동제도 시장이 작동하려면 꼭 필요한 제도다. 주택용계시별 요금제는 우리나라에 별로 필요 없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단독주택이 많은 외국과 달리 부하율이 크고 주택용 전력수요가 많지 않아 실시간 요금제면 몰라도 블록으로 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계시별 요금제가 필요한 것은 상업용이다. 여름과 겨울철 피크는 상업용 냉난방수요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 탄소중립 목표를 철회하거나 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

“물론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특혜를 바라는 건 곤란하다. 당연히 국익도 우선해야겠지만 정정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다만 경제적 충격을 줄이려면 연착륙이 필요하다.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원전도 일부 있어야 하고,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백업용으로 석탄과 가스도 일부 유지해야 한다.”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어렵다고 보는건가. 현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의 수정이 필요한가.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는 포트폴리오 개념이 필요하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여러 개의 가방을 들고 있어야 한다. 1개만 들고 있으면 위험이 너무 크다. 과거 원자력과 석탄, 가스 3개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면, 이제는 원자력과 석탄을 일부 빼서 재생에너지와 분산자원 등 5개의 가방에 옮겨 담아야 한다. 특히 원자력은 탄소중립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20%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보다는 기존 원전을 잘 관리해서 60년, 80년 쓰는 게 맞다고 본다. 산업 측면에서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1%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현재 신규 석탄발전소도 7기나 건설 중인데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보나.

“지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너무 많은 석탄발전소 건설을 허가해 줬다. 7차 계획때 4기나 취소시켰는데도 7기나 건설되고 있다. 앞으로 지금과 같은 수준의 SMP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공정이 더 많이 진행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건설을 멈추는 게 맞다고 본다. 물론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는 당연히 정부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



▶얼마 전 분산에너지 로드맵이 수립됐다. 분산전원이 확대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나.

“최근 들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경제성 때문에 대형으로 가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견 바람직해 보이지만, 대규모 재생에너지는 분산전원이 아니다. 소규모 분산전원들이 건물로, 아파트 단지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력시장에 맡겨서만은 곤란하다. 제대로 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에 보조금을 주듯이 분산전원에 확실한 편익을 줘야 한다. 원전 1기를 짓는 것보다 분산전원 100개를 짓는 게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정부는 전기요금 1~2원 오르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전력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해주신다면.

“우선 젊은 인재들이 전력경제 분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련 전문가 풀이 너무 적다. 신진 세력이 신선한 제안을 해줘야 한다. 또 정부와 국회는 균형감각을 지닌 전문가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전력정책을 수립할 때 과거에는 원자력계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지금은 반대로 환경,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오랜 경륜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부와 국회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차관을 도입한다고 한다.

“산업과 에너지 업무를 한 부처에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에너지가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후환경 문제가 에너지정책에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과거 동력자원부 시절처럼 기후에너지부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게 어렵다면 전력청으로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 후 계획이 있다면.

“아직은 정해진 진로가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봉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도와주고 싶다.”



(프로필)

▲1955년생 ▲부산대 경제학 박사 ▲한국전기연구원 에너지정책 TL(연구위원) ▲1997년~2000년 산업부 4-5차 장기전력수급계획 설비분과 위원 ▲2001년~2013년 산업부 1-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책/설비/수요분과 위원 ▲2014년~2015년 산업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설비분과 위원장 ▲2019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에너지전문위원 ▲2020년~ 한국에너지공단 자문위원 ▲2014년~2020년 한국서부발전 기술자문역(신재생에너지) ▲2010년~2019년 산업부 에너지위원회 정책분과/산업분과 위원 ▲전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셰일가스/915정전대책/분산전원TF위원 ▲대한전기학회 전력경제연구회 위원장



정형석 기자 azar76@electimes.com        정형석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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