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한다면서 원전 줄이고 LNG 늘려서야

원전의 점진적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의 정책적 큰 틀을 유지하면서 석탄발전의 과감한 감축방안을 담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7년 수립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기조로 했다면 이번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기본 기조를 유지하면서 탈석탄, 액화천연가스(LNG) 확대를 통해 친환경 발전 전환 가속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문제는 이번에 발표된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수급 불안, 탄소중립 비전에 배치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과연 비용 증가 없이 탈원전, 탈석탄 가능한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부 관계자들은 몇 년째 비용 증가 없이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고 천명하고 있다. 에너지전환 정책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현재까지는 이 말에 일견 일리가 있다. 코로나19로 전력수요가 줄었고,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천연가스 가격도 과거처럼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는 오히려 천연가스 가격이 석탄보다 낮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앞으로 지속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2019년 기준 한전은 매출 60조원 중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에 2조원, 배출권거래비용 6000억원 등 2조6000억원(4.4%)을 에너지전환 비용으로 썼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신재생 발전비용은 2024년 4조2000억원 규모로 증가하고, 10조원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도 시간문제로 봤다. 배출권구매비용도 내년부터 유상할당 비중이 늘어나 앞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에너지전환의 성공을 위해서는 비용의 추가 부담 없는 에너지전환은 없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알리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유기농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보다 비싼 게 당연한 것처럼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비용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과 가스발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석탄의 감축에 대해서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시대적 과제로 인해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물론 조기폐쇄 및 연료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부담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를 통한 지원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하지만 원전의 감축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전은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데다 수소생산도 가능해 온실가스 감축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저렴하게 대량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어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할 경우 향후 전력수급에 불안을 가져올 가능성도 크다.

천연가스발전에 대한 정부 정책도 잘 수립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을 이루겠다고 선언을 했고, 정부도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준비 중인 가운데 9차 계획대로 석탄발전 24기를 LNG발전으로 전환할 경우 설계수명도 못 채운 채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에 따른 가스발전 좌초자산 발생 우려

미국의 씽크탱크인 에너지경제재무분석 연구소(IEEFA)에서는 최근 ‘PJM 가스화력 프로젝트의 위험성 증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 동부지역 가스발전 산업에 약 5억달러 규모를 투자 중인데 미국 가스발전 사업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어 앞으로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EEFA는 재생에너지의 경쟁력 향상이 가스발전 산업의 투자 리스크 핵심이라고 지적하며, 2020년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하면서 기후변화 정책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가스발전 사업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지리라 전망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는 가스발전이 탄소 배출 감축에 별다른 기여를 못한다는 비판도 한몫하고 있다. LNG의 추출과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때문이다.

카본트래커(Carbon Tracker)와 기후솔루션이 함께 발간한 ‘가스발전, 위험한 전환-한국 가스발전 시장의 재무적 위험 분석 보고서’에서도 한국이 2050년까지 가스발전 설비를 퇴출하지 않으면 600억달러 규모의 좌초자산 위험을 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가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가스발전이 친환경 발전원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가스발전의 탄소 배출과 재생에너지의 가격하락을 고려하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가스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재무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위험한 투자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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