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로 납품한다고 해서 품질이 저하되는 것은 아니다. 원가를 절감하고 가격을 저렴하게 만드는 것은 업체의 능력이다. 적격심사는 신생업체나 납품실적이 없는 업체에는 상당히 불리하다.”

“최저가라면 비용을 위해서 뭐라도 빼게 될 것이다. 일례로 계량기의 황동 비율이 높을수록 열전도율이 좋은데, 한전에서 이 비율을 정해두진 않았다. 최저가로 하면 이런 부분들이 줄지 않겠냐.”

이는 한전 전력량계 입찰에서 최저가와 적격심사를 주장하는 업체들의 말이다.

최근 한전이 적격심사를 고심하다 돌연 최저가로 추진한 이번 전자식전력량계 연간단가 입찰사례는 최저가와 적격심사를 각각 주장하는 계파의 갈등이 표출된 대표적 사례다.

최저가냐 적격심사냐만 놓고 보면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최저가는 가격경쟁력을 갖춘 계량기 업체라면 누구나 사업을 따낼 수 있지만, 품질에 대한 의구심은 떨쳐버릴 수 없다. 반대로 적격심사로 가게 되면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현재보다 개선될 수 있겠지만, 납품실적이 필요한 신규업체에는 분명 불리한 제도다. 사실상 어떤 제도가 더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망가질 대로 망가진 현재 전력량계 시장의 쇄신은 누구라도 공감할 사안이다. 한전이 제도개선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제도든 간에 이번 입찰 과정에서의 한전 대처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충분한 설명 대신 자신들에게 편한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최저가와 적격심사 도입을 각각 주장하는 업체들은 서로 민원을 제기하며 골만 깊어졌고, 한전에 대한 업체들의 신뢰 또한 땅으로 떨어졌다.

한전은 한전대로, 계약을 했다가 이러저런 이유로 리콜 문제가 생기면 폐업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업체들이 너무하다고 느낄 것이다. 반대로 업체들은 한전을 파트너라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끌고 가는 갑의 위치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한전과 업계 간의 깨져버린 신뢰. 이를 만회해야 한다.

당장의 효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소비자와 모든 이해관계자가 믿을 수 있는 정확한 전력 계량을 위해서는 어떤 제도와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는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 다시 논의할 때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라고 본다.

불판이 다 탔다면 아무리 좋은 고기를 올려도 먹지 못한다. 현재의 전력량계 업계가 서로의 이익만 내세우기에 바빠 회생 불가능한 시장이 됐다면, 지금이 시장 건전성을 위한 판 갈이에 함께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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