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격축소, 과중한 부하 배분해 안정성·수명 제고”
“특성분포 따라 허용전류 등 정격제한 개별화 필요”
“공통언어 활용해 업계·수요자 불협화음 해소해야”

최근 전력용 에너지저장장치(ESS)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에서 배터리 화제사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ESS에서는 안전성 확보를 위하여 충전용량을 제한하는 소위 ‘정격축소(derating)’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정격축소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지와 같은 전기부품들은 각자가 견딜 수 있는 전압 및 전류 스트레스에 한계가 있어 이에 따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이를 ‘안전 동작 영역(Safe Operation Area)’이라 한다. 개별 소자들을 직·병렬로 연결하여 만든 전기시스템에서는 개별 부품들의 특성편차 때문에 어떤 부품, 특히 성능이 오히려 우수한 부품들은 개별 부품의 안전 동작 영역을 벗어나게 되어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회로 특성과 구성 부품들의 특성 편차에 기인한 우수한 부품에 가해지는 과중한 부하 배분을 제한하여 시스템의 안정도를 높이고 수명을 보전해 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부품을 개별적으로 이용하는 전기시스템에서는 부품제조자가 제시한 안전 동작 전 영역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부품들을 직·병열로 연결하여 전기시스템을 만들 때는, 부품들의 특성편차 등에 기인한 부하의 불평등 분배가 필연적으로 생겨, 오히려 우수한 특성의 부품들에 안전 동작 영역을 벗어나는 과중한 스트레스가 가해질 수 있기 때문에 허용 전류(혹은 전압)를 제한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제한 행위를 소위 ‘정격축소’라고 부른다.

전기시스템에서 전기부품들의 정격축소 운전기술은 전기부품들의 직·병렬 운전에서 필수적인 기술로 오래전부터 산업현장에서 적용되어 오고 있다. 하나의 예로 발열체를 여러 개 병렬로 연결한 산업용 대형 전기로를 들 수 있는데, 핵심 부품인 발열체 제조업체들은 과거의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사용 매뉴얼’을 제공하여 전기로 제작시의 정격축소뿐만 아니라 적절한 보수유지를 위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매뉴얼에 따라 전열 시스템을 만들고 보수유지를 하면 안전운전과 오랜 수명을 보장할 수 있다.

ESS와 같은 전기 시스템에서 정격축소는 전지와 같은 사용 부품들의 특성 편차와 냉각계의 균일냉각의 한계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산업 생산기술로는 완전히 동일한 특성의 전기부품을 대량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존하는 어떠한 냉각기술도 완벽한 균일 냉각을 보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전기 시스템에서 부품들의 정격축소 운전은 필요불가결하다.

ESS에서와 같이 작은 정격 전류의 전지들을 병렬로 연결하여 큰 전류용량의 시스템을 만들 경우 개별부품들의 특성 차이는 부하 불평등을 야기하여 개별 부품들에 가해지는 전기적, 열적 스트레스에 편차를 가져와 시스템 안전운전을 방해하고 부품의 수명감소를 초래하며, 보수유지에도 특별한 주의를 필요하게 만든다.

특성 편차를 가지는 작은 용량의 부품들을 직·병렬 조립하여 대용량 시스템을 만들 때 가치사슬에서 공정단계가 많으면 정격축소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는 각 공정 단계 별로 각기 다른 정격축소 기술을 적용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의 경우 단위 셀에서 ‘팩→모듈→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길기 때문에 정격축소 기술은 더욱 중요하다.

전기제품의 성능은 크게 정격(ratings)과 특성(characteristics)으로 정의된다. 정격은 ‘절대최대정격’이라고도 하는데, 내전압이나 허용전류 같은 활용 시의 사용한계를 나타낸다. 반면 특성은 안전운전과 직접 관계되는 정격과는 달리, 제품의 우수성을 표시하는 지표로 이를 통하여 다른 제품들과 성능을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손실률이나 응답속도 같은 지표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은 응용 과정에서 정격 항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전기제품에서 정격과 특성은 서로 ‘상충관계(trade-off)’에 있기 때문에 정격이 높아지면 특성은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전압정격이 높아지면 손실률이 증가하고, 전류정격이 커지면 응답속도가 나빠지는 식이다.

전기제품을 대량생산 할 경우 정격을 결정하는 내전압이나 허용전류는 품질관리의 절대요소로 관리되어 정격이하의 제품은 불량으로 처리된다. 따라서 불량률을 줄이기 위하여 <표1>과 같이 설계 정격 기준 값을 출하 제품의 정격보다 높게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회사는 제조기술에 따라 설계 기준치를 달리하는데, 제품특성을 균일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우수한 업체는 설계 기준치를 출하제품의 정격에 가깝게 설정할 수 있다. 반면 기술력이 낮은 업체는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표1>처럼 설계 정격치를 높게 잡아야하므로 <표2>의 B사 제품처럼 특성이 평균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특성 산포도가 큰 제품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용자들이 주의하여야 할 사항은 제품 카탈로그 상의 정격 및 특성 값들은 개별 제품의 특성치가 아니고 대표 값들이라는 것이다. 즉, 해당 회사의 제품들은 적어도 제시된 정격과 특성을 만족한다는 뜻이지, 해당 제품들이 데이터시트 상의 특성을 똑같이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부품들을 구입하여 직·병렬로 구성한 전기시스템을 제조하는 업체는 같은 정격의 부품들이라도 제품들의 특성분포는 생산업체마다 다르고, 같은 업체의 제품이라도 로트별로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스템 제조자는 자기에게 알맞은 특성 분포도를 공급자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설계 시 구매 부품들의 특성분포에 따라 허용전류와 같은 정격의 제한 조건을 달리 설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와 같이 단위 셀에서부터 시스템까지의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경우에는 각 단계에서 해당 단계에 맞는 ‘정격축소기술’을 적용하여 제품의 축소된 정격과 달라진 특성 편차 등을 전방 수요자에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를 예로 들 때, 모든 셀의 충·방전 특성을 측정하여 확보하는 것은 공급자나 수요자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대량생산하는 경우에는 이 방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대량 생산시스템에서는 통계적 기법으로 정격축소 계산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

실재 병렬 운전 시스템에서 전류 용량이 낮아지는 이유는 2가지인데, 하나는 평균 특성이하의 열등 부품들에서 나타나는 자연적 전류배분 축소이고, 다른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평균 특성 이상의 우수 부품들에 가해지는 과부하를 방지하기 위한 강제적 전류제한(정격축소)에 따른 것이다. 이는 병렬회로의 특성 때문에 내부 임피던스(저항)가 큰 열등 소자에는 기준 전류 이하의 전류만 흐르게 되고, 내부 임피던스가 작은 우수한 소자에는 전류가 과도하게 배분되기 때문이다.

한편 전기제품의 보수유지에서도 정격축소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전지의 경우 충·방전 특성은 열화(degradation) 현상을 보인다. 만약 전지시스템을 장시간 사용하여 구성 전지들이 상당히 열화가 된 상태에서 하나의 전지가 작동 불가하여 교체할 때, 성능이 뛰어난 새 전지로 교환할 경우, 새 제품의 우수한 충·방전 특성으로 인하여 새 제품에 오히려 더 과중한 부하분배가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특정한 전지에 더 많은 전류가 흐르게 되면 전류량에 비례하는 화학반응에너지와 흐르는 전류의 제곱에 비례하는 전기적 줄(joule) 열로 인한 과열 문제를 일으킨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로를 보수 할 때는 동작불능 발열체만 교체하는 것 보다는 발열체 모두를 같이 교체하는 것이 공장의 전체 생산성 측면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아 ‘응용 매뉴얼’에서는 이러한 보수유지기술을 추천하고 있다.

현존하는 전기제품의 생산과 응용에서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전기부품제조와 시스템 응용 사이의 기술사슬에 관계되는 모든 기술자들을 연결해 주는 공통 언어가 필요하며, 이 언어가 바로 정격축소기술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실제 전기부품을 만드는 사람은 주로 화학이나 재료 기술자들이며, 이런 부품을 가지고 전기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은 화학이나 재료기술 분야에는 덜 친숙한 전기 기술자들이다. 이들 사이에서 공통언어인 정격축소기술을 통하여 서로 협력함으로써 부품공급자와 수요자 사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물론 상생발전의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배터리업계와 수요자 사이에 생긴 불협화음도 이러한 공통언어를 통한 상호 이해로 시급히 해소되길 바란다. 아울러 이러한 소통을 통하여 전지 관련 제품을 만드는 공급자들은 수요가가 원하는 제품들을 만들고, 시스템 제조자들은 경제적인 전기저장시스템 제조하며, 운영자들은 보다 나은 안전 운전 기술을 확보하여 우리나라가 이 가치사슬에서는 기술을 선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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