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호 전국전력노조위원장 인터뷰

재생에너지 투자효율성 높이고 동북아 전력산업 주도권 위해 컨트롤 타워 필요

시장이 만능이 아닌 우리 상황에 맞는 지속 가능한 최적의 모델 찾아야

전력산업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났다. 2001년 한전 독점에서 석탄과 원자력 중심의 발전회사 분할은 과도기적 개편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한전 체제에서 화력 5개사, 원자력, 민간발전 체제를 구축하며 전력산업은 성장했고, 과도기가 정착돼 전력산업구조개편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됐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퍼진 에너지전환이 잠들어 있는 우리나라 전력산업구조 논쟁에 불을 지필 태세다.

1990년대 전 세계 전력산업은 신자유주의 바람에 편승해 자유화 시장화가 주를 이뤘다. World Bank, IMF 등 경제기구들은 전력부문의 시장주의 모델을 만능해법으로 판단해 세계에 전파했다. 독립규제기관을 설치하고 전력 유틸리티의 수직 및 수평 분할을 요구했으며, 발전과 배전 부문의 민간참여를 확대하고 도매시장 개방이 유행처럼 번졌다. 30여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 국가들은 수직통합을 유지 하고 발전 등에 일부 민간이 참여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를 도입하고 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의 약 68%는 수직통합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월 발간한 World bank 의 보고서 'Rethinking Power Sector Reform in the Developing World (개발도상국의 전력 부문 개혁에 대한 재고 )' 를 보면 ‘시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라고 결론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전환의 성공을 위해선 현재의 전력산업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구조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 될 전망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경남 김해시을)은 한전의 발전자회사들의 비효율적 경영과 방만 경영, 중복 투자 문제 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전력산업 재구조화 방안’을 제안했다. 5개 화력발전사를 권역별 2개 화력발전사 통합하고 한수원은 원전‧폐전 전문회사로 전문화 하며, 발전사별 혼재, 중복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합‧ 일원화 하자는 게 골자다. 이런 논의는 5일 국회 토론회를 시작으로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최철호 전국전력노조 위원장은 “에너지전환의 성공을 위해 지속가능한 전력산업구조에 대한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보면 공공주도가 핵심이며, 이를 위해 한전은 물론 각 발전회사들이 신재생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데 중복 투자에 대한 우려는 물론, 향후 복잡해지는 시장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 한전과 발전자회사간 협업을 강화해 투자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며,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간헐성, 불안정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동북아 전력연계, 남북 교류협력 등 굵직한 동북아 현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요구되며, 이는 예전처럼 한전 중심의 통합이 아닌, 다양한 논의를 통해 이상적인 구조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 최철호 전력노조 위원장을 만나봤다.

-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중단된 후 20년이 됐다. 전력산업 현장에서 지배구조, 노동환경 등 다양한 고민을 해왔는데, 최근 전력산업 최대 현안을 무엇으로 보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은 국내외 산업의 생태계 전반을 바꾸는 큰 모멘텀이 되고 있다. 에너지전환 시대에 ‘기후환경’이라는 변화의 흐름은 기존의 석탄 화력과 원전 등 전통적 발전방식에서 천연가스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확대로 옮겨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이를 구체화 함으로써 탈 석탄과 탈 원전이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21대 국회에서도 3020 신재생에너지, 그린뉴딜 등의 에너지 정책과 더불어 대규모 신재생 발전사업의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해 관련 법안이 개정· 발의됐다. 전통적인 시장의 변화도 예견된다. 재생에너지 도입 확산을 위해 기업이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는 RE100을 위한 녹색요금제, 제3자 PPA 및 기업 PPA(전력구매계약)는 생산과 판매, 구매의 자율화를 위한 직전 단계로 전력거래의 자유화를 위한 기존 규제의 변화도 예상되는 시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 일본, EU 등 글로벌 국가들의 에너지 산업체제는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에너지 공급원만의 변화가 아니라 기존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도 20년 과도기를 거쳐 이제 격변의 전환기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 재생에너지 증가와 시장의 다변화는 전력산업 변화를 이끌텐데,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기후변화 정책을 우리보다 앞서 시행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글로벌 국가들의 에너지 전환 이행과정 사례를 보면, 노동자의 고용 유지 문제, 발전소 이전 또는 신규 건설이 인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지역간 대립과 갈등, 그리고 이와 연관된 민간기업과의 이해관계 등이 기후 위기에 대응한 녹색산업 체제로 전환하는데 주요한 쟁점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선례를 타산지석 삼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나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합리적인 의견이 반영되고 정책화되는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다. “

-통합적 전력산업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있다. 분산, 분권이 화두인 시대에서 통합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통합을 주장하는 배경과 그 방향은.

“2001년 발전사 분사 이후, 전력산업은 시장과 정부 사이에 놓인 미완의 구조로 20년이 흘렀다. 이런 불완전한 체제하에서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법에 의거 340여개나 되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각 기관의 특성에 따른 평가방식이 아닌 획일화된 경영평가 기준을 적용해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양산해 왔다. 이는 발전 자회사간 무리한 경쟁으로 귀결돼 해외사업 중복투자와 발전사가 연료를 개별적으로 구입해 연료구입 단가가 상대적으로 오르는 등 시장의 효율성 증대는 단언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또 한전과 한수원, 발전 자회사의 경우, 모자 관계에 의한 연결재무제표에 따라 한전 사장이 전략적 경영을 통해 자회사들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어야 함에도, 모회사 사장이 자회사 경영 전반에 전혀 관여할 수 없는 구조로 비효율은 극에 달했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원의 구매, 발전 송배전 판매가 모두 분할된 전력산업구조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협조를 거쳐야 하는데, 수익성과 비용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때문에 전력공급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너지전환 시대는 한전을 통합 거점(Control Tower)으로 연료 특성이 조금씩 다른 발전 자회사간 에너지 믹스를 발전원 전체 차원에서 조정한다면 에너지 믹스가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고, 에너지 전환도 한층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방향에서 전력산업의 합리적인 거버넌스 완성을 통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력의 공급, 국가 산업발전과 국민 생활에 필수 공공재로서의 공공성 확보, 그리고 변화무쌍한 세계 에너지 시장에 있어 지속 가능한 전력산업이 되도록 추진돼야 한다.”

- 전력산업의 변화는 일자리 문제도 가져오는데, 석탄발전 등의 폐쇄는 결국 일자리는 줄어드는 정책들인데, 대책을 무엇으로 보나.

“탈석탄은 분명 일자를 줄이는 정책이다. 하지만 일자리 때문에 에너지전환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한전과 발전사간 사업 조정을 통해 인력 협업이 필요하다.

급 성장하는 신재생 시장은 전력 그룹사간 협력 강화를 필요로 한다. ‘2034년까지 신재생 발전설비를 78.1GW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전과 발전사 그리고 민간 사업자간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리고 한전의 신재생발전사업 참여는 사업 규모와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반영해, 신규사업 추진시 그룹사간 충분한 사전협의로 중복투자 및 불필요한 경쟁을 없애고 전체 이익이 확대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석탄화력 폐쇄로 발생할 수 있는 유휴인력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발전사의 다년간 축적된 EPC, O&M 인력 참여로 발전사의 일거리 확대 및 유휴인력 문제가 자연 해소될 것으로 본다. 과거 필리핀 세부 석탄, 요르단 알카트라나 가스복합 등의 동반진출 사례를 살려 동반성장 기반이 강화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전기요금 체계도 손을 봐야 한다. 요금체계 정상화를 위한 방향은.

“탈원전과 탈석탄 중심의 에너지전환 시대는 지금과는 다른 전기요금 체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한전이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와 ETS(탄소배출권거래제) 등의 환경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전기요금과 더불어 환경비용을 항목으로 만들어 소매요금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들에게 깨끗한 기후환경을 위한 비용지출에 대한 기본 개념을 알리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더불어 현행 전기요금 제도는 원가의 80%를 차지하는 연료비 등락과 관계없이 소매요금(전기요금) 변동이 없다보니 고유가 시대에는 회사의 재무구조가 악화 된다. 반대로 저유가시에 국민들에게 요금인하 혜택이 돌아가야 하지만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경직된 요금체계는 한전의 글로벌 기업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으며 대외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또 내부적으로는 조합원들의 복지와 급여에도 악영향을 줬다.

이에 올해 말 전기요금체계 개편에 맞춰, 석유, 석탄 등 연료값 등락을 바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연료비 연동제는 경직된 요금체계에서 벗어나 외적요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드는 것이며, 국민들에게 합리적 소비를 유도 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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