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전력·에너지 업계는 그야말로 혼돈의 세계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고, 여기저기서 갈등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표적인 게 바로 전력계통 분야다. 지난 3월 28일 오후 2시. 석탄발전소인 신보령 1호기가 불시 정지하자 예상치 못하게 주파수가 훨씬 더 하락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전 기준상 배전선로에 연결된 태양광 설비들이 계통 주파수가 59.8Hz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운전을 정지하게끔 설정된 것이 원인이었다.

지난 5월 2일에는 전력계통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원전 출력을 낮추는 조치가 이뤄졌다. 국내 원전이 전력계통 운영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출력을 낮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로 전력수요가 감소한데다 일사량이 좋아 태양광발전량이 많아지면서 원전의 출력을 낮추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계통전문가들조차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앞으로 이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전력계통의 운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만큼 정전의 위험도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려면 결국 전력망을 보강하거나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태양광 및 풍력 등의 발전량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DR(수요반응), ESS(에너지저장장치), 양수, 가스터빈 등 다양한 유연성 자원을 늘려 대응하거나 재생에너지의 출력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조치에는 모두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출력조절이 맘대로 안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에 대비하기 위해 충분한 예비력을 확보하고, 예비자원들이 언제든 투입될 수 있도록 대기시키려면 당연히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에너지전환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갈등하는 것도 바로 요금 문제다. 세상에 깨끗하고 저렴하면서 안전한 에너지는 없다. 깨끗하고 안전하려면 당연히 기존 에너지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이를 부정하다 보니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다.

한전이 신재생발전사업에 진출하려는 이유 중 하나도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에만 관심을 보이고 재정을 투입할 뿐 전력망 보강과 전력시장제도 개선에는 뒷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재생에너지가 보급된다면 머지 않아 크고 작은 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는 정부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전력망 보강에 나서고, 이러한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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