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확장 전략 응답했다…9년 만에 최대실적
국내 최고(最古) 전선기업, 부활 알리는 신호탄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공장 전경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공장 전경

대한민국 전선 산업의 대명사 격인 대한전선이 오랜 시련의 터널을 빠져나와 국내외 전선시장을 호령하던 옛 ‘영광’을 서서히 되찾고 있다.

대한전선(대표 나형균)은 올 상반기 9년 만에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본격적인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상반기 매출액은 7413억원, 영업이익은 291억원으로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도 73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무려 15배가량 급증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259억원도 반기 만에 가볍게 뛰어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상반기만 놓고 보면 영업이익은 9년 만에 최대치다.

대한전선의 실적 개선은 올해 들어 확연해지고 있다. 1분기에 매출 3630억원, 영업이익 82억원을 달성하며 1분기 기준으로 6년 만에 최대 실적을 거뒀다. 2분기 매출액도 3783억원, 영업이익 20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6%, 800% 각각 증가했다.

◆국내 최고(最古) 전선기업, 시련은 끝났다

대한전선은 흔히 1955년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1937년 조선제련㈜ 시흥전선제작소가 모체다. 1941년 조선전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고(故) 인송(仁松) 설경동 회장이 조선전선을 인수하며 사명을 대한전선으로 바꾼 시점이 바로 1955년이다.

국내 전선업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설 회장이 워낙 강렬한 족적을 남긴 탓에 대한전선의 출발을 그 때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엄밀하게 보면 1937년을 대한전선의 시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인송은 대한전선을 재계 4위의 거대 기업으로 키울 만큼 경영능력이 탁월했다. 강한 추진력과 집념을 지닌 창업주로서 우리나라 재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대한전선은 195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54년 동안 연속 흑자 행진을 벌였다. IMF 외환위기도 끄떡없이 버텼던 대한민국 최고의 알짜 기업,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우량 기업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2000년대 초까지 국내 전선업계 부동의 1위 자리도 수성했다. 업계에선 대한전선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당시 세계 2위(현재 1위) 전선기업이던 프리즈미안을 인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철옹성 같던 대한전선은 2대 설원량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와 무리한 사업 확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형 악재가 겹치며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에도 차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혹독한 구조조정 속에 결국 2013년 설경동 회장의 손자인 3대 설윤석 사장은 경영권 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르고, 이를 계기로 창업자 가문은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3년여의 매각 작업 끝에 대한전선은 지난 2015년 국내 사모펀드 프라이빗에쿼티(IMM PE)를 새 주인으로 맞는다. IMM PE는 대한전선 인수 이후 부실 자산 정리와 재무구조 개선에 매진하고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등 임직원 처우 개선을 통해 경영정상화의 발판을 다졌다. 바닥까지 추락했지만 초고압케이블을 중심으로 반세기 넘게 쌓아왔던 전선 본연의 경쟁력은 대한전선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대한전선은 전통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높았던 중동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면서 미국과 유럽, 러시아, 인도 등 새로운 시장에서 하이엔드급 초고압케이블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전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해외 시장 확대 ‘올인’…과거의 영광 찾는다

대한전선이 부활을 알리는 확실한 터닝 포인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해외시장 강화 전략이 주효한 덕분이다. 향후 지속적인 성장 여부도 글로벌 경쟁력을 얼마나 강화하면서 동시에 확대할 수 있느냐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나형균 대한전선 사장은 올 초 ‘혁신’과 ‘성장’을 경영키워드로 제시하면서 “성과 창출의 기반을 마련해 성장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언급한 혁신과 성장도 결국은 ‘글로벌’에 방점이 찍혀있다.

실제로 대한전선은 해외시장 확대를 통해 성장을 도모한다는 전략 하에 해외 지사 및 법인 경쟁력 강화에 힘써왔다. 이 같은 노력이 실적 턴어라운드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대한전선은 우선 미국과 유럽 등을 전략 지역으로 삼고 그동안 아시아, 중동, 오세아니아 등에 집중돼 있던 해외 시장을 다변화하고 있다.

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 장악력이 낮았던 미주와 유럽 지역을 전략 지역으로 삼아 신규 지사와 법인 등을 추가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파견하는 등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2017년 9월에 미국 동부 지사를 추가 설립, 서부에 집중되던 영업력을 미국 전 지역으로 확대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주 동서부 전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다. 지난해 현지에서만 2700억원의 수주고를 올리며 미국 진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유럽은 노후 송전망 교체 및 신재생 에너지 증가가 두드러지는 지역이다. 그만큼 전선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한전선은 2017년 4월에 영국지사를, 2019년 하반기에는 네덜란드 법인을 설립했다. 모두 유럽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다.

2017년 스웨덴에서 초고압 지중망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영국 등에서 크고 작은 수주를 이어왔고 지난 3월 덴마크에서 8년간 케이블을 공급하는 장기계약을, 5월에는 네덜란드 최고 전압인 380kV 초고압 전력망을 구축하는 1300만불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해외 거점본부 기반 글로벌 영향력 확대 추진

대한전선은 지난해 1월부터 국가별로 운영하던 해외 지사를 권역별로 총괄 운영하는 거점본부로 승격 운영하고 있다.

각국의 보호 무역이 강화되고, 후발업체의 기술력이 높아져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점본부의 책임 경영을 통해 해외 영업망을 확대하는 한편 고객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미주와 유럽, 중동 등 총 5개 본부에 16개의 지사(14개) 및 영업 법인(2개)이 포진돼 있다.

2017년 11개에서 2018년 12개, 지난해 13개, 올해 14개로 해외 지사도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만 해외에서 네덜란드 전력망 프로젝트, 싱가포르 케이블 교체 사업, 카타르 송전망 공사, 덴마크 고압케이블 장기공급계약 등 굵직굵직한 수출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면서 “상반기 수주 잔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0%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전선은 해외시장에서 단순히 입찰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각 거점본부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술력과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기반으로 사전에 기술 제안을 하며 고객사의 니즈를 파악해 가는 촘촘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에 접어들면서 인력 및 공급 체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글로벌 고객사를 위해 정기적으로 기업 주요 사항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소통 강화에 힘쓰고 있다”며 “수시로 해외 거점본부 회의를 통해 현안을 점검하고 각 지역과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전선 당진공장에서 전력케이블을 생산하고 있다.
대한전선 당진공장에서 전력케이블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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