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적 의견 소신 있게 말해 국민 신뢰 얻어야”

세계 각국의 원자력학회와 교류...부족한 부분 보완, 미래 준비할 것
APR1400 설계기술 유지 위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바람직
탈원전과 별개로 패러다임 변할 시기 사용원전·발전 중심에서 벗어나야
기초지식·안전교육 강화하고 퇴직자들 역량 DB화 필요

“원자력학회는 전문적으로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정부와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요. 싸우는 것보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인해 국내 원자력계는 혼돈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춘계 학술대회를 통해 원자력 안전, 4차산업과 원전 등 원자력이 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원자력계가 변곡점을 맞아 미래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현재 시점에 민병주 원자력학회장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원자력의 미래상은 무엇인지, 또한 학계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 원자력학회 역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학술발표회가 진행됐다. 성과는 어땠고, 추후 보완돼야 할 점은 무엇인지.

“예상보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춘계 학술발표회엔 통상적으로 논문은 약 650편이 등록되고 참가자는 1400명가량 된다. 온라인으로 진행한 이번 춘계 학술발표회는 논문 608편이 등록돼 온라인 전환의 영향이 크게 없었다. 다만 참가등록자는 약 970명으로 평소보다 400명 이상 줄었다. 아무래도 현장에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 첫 시도치고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분석이다. 3일 동안 서버를 열어놨기 때문에 시간·공간적 제약이 없이 여러 세션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개선돼야 할 점은 방문자 수, 다운로드 수 등을 기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준비시간이 짧기도 했고 처음 하는 것이다 보니 놓친 부분들이 있었다. 실시간 소통 방안도 고민을 통해 보완·개선해야 한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10월 셋째 주로 예정된 추계 학술대회는 총회 일정이 있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 친원전·탈원전 세력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원자력 본연에 관한 논의가 사라졌는데.

“학회는 전문가집단이므로 정치 논리보다는 전문가들의 학술적인 의견을 얘기해야 한다. 특히 갈등을 심화시키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에너지 정책은 각 나라가 처한 각기 다른 환경에 맞춰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 독일 등의 정책을 참고할 순 있겠지만 에너지 부존국가인 한국에 맞는 에너지 정책이 뭔지에 대해 다시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발전원의 경제성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환경,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원자력학회가 전문가집단으로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정책 수립을 위해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18년에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에서 에너지 관련 학회가 모여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에너지믹스 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같은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올해도 에너지믹스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려고 한다. 세계원자력학회연합회(INSC)를 매개로 세계 각국의 원자력학회들과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우리가 좀 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원자력학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INSC 수석부의장인 성풍현 박사가 내년부터 의장을 맡는다. 원자력학회는 성 박사의 INSC 의장 역할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 APR1400 등 많은 자원을 투입해 개발한 한국형 원자로가 사장된다는 의견과 현대 기술로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명쾌한 해답이 없다는 의견 등 원전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APR1400 설계기술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설계인증을 받았다. 그만큼 우수한 설계기술을 유지해야만 대형원전 수출도 가능한데, 이를 위해서라도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이 재개돼야 한다는 게 원자력계 다수의 생각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처리기술도 중요하지만 사용후핵연료 저장부지를 선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 사용후핵연료 부지선정이 안 되면 원전해체도 할 수 없다. 재처리와 영구저장 사이에서 정책적인 결정도 필요하지만 그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중간저장시설이라도 빨리 결정해서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곳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원전을 폐로한다고 가정해도 이미 발생한 사용후핵연료가 있으므로 어딘가에는 보관해야 한다.”

▶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원자력 학계에서도 인재 유입이 줄어들고 유출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지금은 아예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는 상용원전, 발전중심의 인력양성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탈원전 정책과는 별개로 과거처럼 대형원전을 계속 지어나가진 못할 것이다. 따라서 기초지식에 대한 교육이 강조돼야 하고 인적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교육도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 과정 변화, 진·출입 인력 간 차이를 없애기 위한 퇴직자들의 역량을 데이터베이스(DB)화 등 두 가지가 병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원자력학회도 이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탈원전 정책이 아니더라도 변화했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원자력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늘어난 것 같다. 국내 원자력 관련 연구에서 발전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정도인데 일본이나 외국 사례를 보면 비발전 분야가 70%를 차지한다. 국내 원자력연구도 이런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하는데 갑자기 탈원전 정책이 진행되면서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칼로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단계를 밟으면서 골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없어지도록 하면 안 된다.”

▶ 최근 원자력 관련 연구는 어떤 경향성을 띠고 있나.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까.

“에너지전환 정책 이후에 연구 분야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원전해체, 원자력 안전, 방사선 응용 등이 많이 언급된다. 발전 분야는 중소형·초소형원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중소형원전을 활용해 대형원전을 도입하기 어려운 나라에 진출하고 초소형원전은 우주·해양·선박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조금 더 미래를 생각한다면 ‘원자력전지(Nuclear battery)’를 생각하고 있는데 최근 관련 연구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1985년 영화인 ‘백 투 더 퓨처’의 한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영화에 휴대용 가스레인지용 부탄가스 캔처럼 생긴 미래형 자동차 연료가 등장하는데 연료에 Pu(플루토늄의 원소기호)라고 적혀있었다. 10년가량 전부터 이걸 예로 들면서 원자력전지 얘기를 했다. 실제로 그게 가능한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방사선 이용기술은 의료, 식품 등에서 지금도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므로 연구·개발도 활발해질 것이다.”

▶ 생활과 밀접한 원자력, 방사능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게 관건일 것 같다.

“그렇다. 얼마 전에 라돈 침대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래서 원자력학회와 방사선방어학회가 힘을 합쳐서 무서운 것은 뭔지, 무섭지 않은 것은 뭔지 등에 대해 제대로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라돈 바로 알기’ 책을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생활방사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강사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원자력여성전문인협회, 안전실천시민연합 등과 협력을 통해 이미 진행된 부분도 있고 앞으로 진행할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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