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에서 영토는 무한하다.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전 과정이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멈춰선 시계 바늘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산업 육성을 위한 토양은 부지런히 만들고 있지만, 제대로 씨를 뿌리지는 못한 상황이 됐다.

발전분야는 전력공기업과 민간기업 간 활발한 경쟁이 시작됐다. 현재 설비용량(110GW)을 기준으로 한전 및 발전자회사의 비율은 70.3%, 민간은 29.7%를 기록하고 있다. 민간기업들이 전력도매시장에 참여해 활발히 경쟁을 하고 있지만, 2001년 만들어진 시장제도가 일부 걸림돌로 작용을 하고 있다. 소매시장은 아직 독점구조다. 한전이 안정적으로 시장을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편익은 높다.

전기요금이 묶여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요금으로 국민들은 편익을 누리고 있다. 최근 30년간 공공요금의 변화를 보더라도 국민들이 낮은 전기요금 편익을 누리는 것은 명확하다. 최근 30년간 공공요금 변화를 보면 전기요금은 1.9배 상승한 반면 버스요금은 10.8배, 지하철요금은 6.8배, 택시요금은 6배 올랐다. 다양한 사업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소매시장 자유화가 요구되지만 요금인상에 대한 우려는 지울 수 없다.

낮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과소비를 불러왔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10.1MWh/명으로 OECD 36개국 중 8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딜레마다. 요금을 올려 소비를 줄여야 하지만, 국민 편익은 줄어든다. 하지만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 계획대로 에너지전환에 성공한다면 석탄과 원자력보다 비싼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환경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요금을 올리는 대신 소비자의 선택권을 다양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한전은 주택용에 계시별 요금제도를 시범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운용 결과를 기반으로 확대도 고려하고 있다.

IT기술이 접목된 AMI 보급이 필수다. 실시간으로 전력사용량을 계량해 시간대별 전력사용량을 파악해야 하는데 아직은 기기보급이 부족해 시행은 요원하다.

SKT, 파란에너지 등 IT기반 기업들이 선택요금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폭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20년 동안 구조개편이란 낡은 제도의 틀에서 산업이 성장하지 못했다면 기술의 융·복합은 제도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 태세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증가는 시장제도 개선이란 필연을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일 뿐 다양한 시장의 출현은 기정사실이 됐다.

국내시장의 필연적인 경쟁에 내몰린 국내 유틸리티들은 이제 해외시장을 눈을 돌린다. 국내 독점시장에서 쌓은 전력설비 운영 노하우는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 석탄화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해외시장에서 역점을 두는 것이 재생에너지다.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은 국내에서 석탄화력 퇴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유휴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기술과 지역의 경계가 사라진 전력산업의 안정적 독점시장에서 순탄하게 성장해 온 국내 전력 유틸리티들은 앞으로 펼쳐질 10년이 어찌 보면 운명의 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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