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업계, 방사선 산업같은 비발전 분야 육성으로 눈 돌려야"

임춘택 한에너지기술평가 원장은 이공계 출신 에너지 전문가이자 국방, 항공·우주 관련 분야를 두루 경험한 인사다. 임 원장은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카이스트 부교수,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를 역임하고 지난해 6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는 임춘택 원장이 기자 간담회를 열고 1년 동안의 원장직 수행에 관한 소회와 정부 에너지정책 수행과 관련한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국방이나 항공·우주 분야에선 사고가 나는 것을 전제로 그 이후를 연구합니다. 그런데 원자력 분야는 국방 분야 등과는 마인드가 아예 달라요. 제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중대사고 방지를 위한 연구를 추진하니 (동료 학자들이) ‘재수 없는 것 연구하다’고 뭐라 하더군요. 원전과 관련한 연구·투자는 안전에 방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임 원장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카이스트에서 항공우주공학과 전문 교수로, 2009년부터 2016년까지는 같은 학교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부교수로 일했다. 그는 원자력 업계에 3만여 명이 넘는 고급 인력이 모여 있으면서도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고 작심 비판했다.

“제가 한국 학회를 많이 경험해봤지만, 원자력 학회처럼 정치화된 곳은 못 봤습니다. 특정 정치 집단과 완전히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점, 특정 정당만 옹호하는 것은 문제라고 봐요. 상대 당을 완전히 매도하고요. 정치학회도 이렇겐 안 합니다. 특히 시니어 교수들이 의견을 고집하는 점이 그렇죠. 전 세계 원전 시장은 축소되고 있어요. 이념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는 원전이 지고 다른 에너지원들이 성장하는 추세에 발맞춰 원자력 업계와 생태계의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과 관련한 투자는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처럼 이미 지어놓은 원전이나 건설 중인 원전을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운영하는 데 쓰여야 해요. 그리고 방사선 산업 같은 비발전 분야를 육성 해야 합니다. 방사선 의료부터 진단, 치료, 농업, 식품, 소독 등 각 분야서 수출 가능성이 아주 높죠.”

임 원장은 이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비롯한 에너지 저장분야, V2G, P2G, 양수발전설비, DR 기술 등이 한국이 세계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산업이라고 평가했다.

“저는 에너지·환경 분야에서만도 500조원가량의 수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희 같은 연구 전담기관이 할 일은 첫째로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 둘째로는 시장에 바로 진입해서 쓸 수 있는 기술을 잘 분별해 이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일이고요. 80%의 지원비는 이러한 기술에 투자하려고 노력합니다. 단순히 기업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무의미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두어선 안 되죠.”

한편 임 원장은 이날 솔직한 입담으로 “그간 에너지기술평가원은 연구전담기관으로서 갑의 위치에 서 있었다”며 “이를 탈피하기 위해 온라인 메타순환평가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연구자가 에기평 과제를 수행하면서 과제 수행과 함께 복잡한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을 보고 들은 결과다. 해당 방식은 효율성과 더불어 연구 평가의 신뢰성, 공정성이 올라갔다는 평을 받았다.

이날 임 원장은 최근의 재생에너지 붐부터 ESS 화재까지 일련의 현상들이 단순히 현 정부만의 공과 과는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ESS 화재와 함께 관련 가중치 정책이 비판받았지만, 이는 사실 지난 정부서 REC를 높여놓은 결과이지요. 태양광 등이 보급될 수 있었던 기반인 RPS 제도도 지난 정부서 만들어진 것이고요. 재생에너지 육성과 에너지효율화, 탈원전 등과 관련한 성과와 과오를 모두 현 정부의 것이라 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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