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원전 1호기의 열출력 급증 사고가 원자력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원인 발표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또 하나의 어이없는 인재(人災)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반원전단체들은 “체르노빌 사고” 운운하며 즉각 폐지 집회를 벌여도 한수원과 원전당국은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없다. 사고 이후 한빛원전 제1발전소장과 운영실장 발전팀장 등 3명의 직위를 해제한 것은 한수원 스스로 인재를 인정한 결과다.

물론 한빛원전 1호기는 문제가 된 원자로 제어봉 인출이 계속됐더라도 원자로출력 25%에서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도록 설계돼 있어 체르노빌 원전과 같은 출력폭주로 인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체르노빌 원전의 경우 안전설비가 작동하지 않도록 차단한 상태에서 시험을 무리하게 강행하다가 출력폭주가 발생했다. 물론 안전설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한빛원전 1호기는 모든 안전설비가 정상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 원자로 운전은 원자로조종감독자면허 또는 원자로조종사면허를 받은 사람이 하는 것이 원칙이나 원자로조종감독자 면허 소지자가 지시·감독하는 경우에는 면허가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그러잖아도 탈원전 정책으로 기도 제대로 못 펴고 있는 원자력계가 한수원 스스로 자초한 인재로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사실이다.

한수원은 10일 한빛원전 시험가동 작업을 할 당시 원자로 내에 열을 제어하는 제어봉 조작에서 출력의 완급 조절에 실패해 1시간에 최대 3%씩 열출력을 높여야하는 데도 계산과 판단 잘못으로 지침서상 제한치(5%)보다 3배가 넘는 18%까지 올랐는데도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고, 즉시 원자로 가동을 멈춰야 하는 매뉴얼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제어봉이란 자동차로 치면 브레이크다. 원자로에 밀어 넣으면 출력이 낮아지고, 올려 빼내면 출력이 높아지는 구조다.

관리·감독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안위는 출력급증 상황을 보고 받고도 12시간가량 아무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적어도 원안위는 출력 제한치를 초과했던 상황을 보고 받은 즉시 원자로 가동을 정지하도록 한 후 조사에 들어갔어야 했다는 얘기다.

원안위와 한수원 편을 들자는 것은 아니지만, 가동하고 있는 원전을 미미한 고장이나 이상신호에 일일이 반응해 그때마다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또 경제적 손실도 크다.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 단순한 계산만으로 100만kW 원전을 하루만 가동하지 않아도 10억 원이 날아간다. 한수원이 한전 자회사로 공기업이니 다 국민이 낸 세금이다. 과거 원안위와 한수원이 기준치를 넘나들 정도의 미미한 이상상황에 대해 원전을 정지하지 않고 조치 후 계속 발전을 하도록 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과거의 일이다. 이젠 이래서는 안 된다. 철저히 매뉴얼을 따라야 한다. 이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안전 아닌가.

일은 일어났고, 수습만 남았다. 수사권을 갖고 있는 원안위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원인을 밝혀내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당장은 국민들의 질타를 받겠지만, 이것만이 그나마 남아 있는 원전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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