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서머싯 몸 소설 ‘달과 6펜스’의 한 대목이다.

재능은 없지만 착한 화가 스트로브는 폴 고갱이 모델인 것으로 알려진 가난한 화가 스트릭랜드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해줬다.

심지어 스트릭랜드와 바람난 부인을 내쫓기는커녕 살던 집에서 둘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트로브 본인이 집을 나올 정도였다

스트릭랜드는 배은망덕했고, 스트로브는 자존심도 없는 듯이 보였다.

이에 소설 속 화자(話者)가 그 이유를 묻자 스트로브는 “그 사람 정말 천재일세. 확실해. 지금부터 백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와 알고 지낸 덕분일걸세”라고 답했다.

극소수의 놀이터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산에도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선다.

부산의 모교수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찬성하는 성악가들을 향해 이해관계인이라는 말로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되면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성악가들의 입장은 객관성이 떨어지고 부산시민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부산시민들은 천재 스트릭랜드보다는 재능은 없지만 착한 스트로브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우주의 먼지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운명이다. 스트로브에게 후대의 사람들이 그 이름을 기억해줄 유일한 방법은 천재 스트릭랜드와의 인연뿐이다. 예술가들은 그래서 경제논리를 떠나 후원받을 자격이 있고 메세나(Mecenat)라는 말도 생겨났다.

예술가의 재능은 선천적이지만 예술을 감상하고 진가를 확인하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후천적으로도 가능하다.

펠릭스 멘델스존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도 그리스에서 가난하게 성장했다. 오페라가 극소수의 놀이터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친구들 중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나타날 수 있으며 그와의 인연으로 후대의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조금이나마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런 행운이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처럼 예술이 발달한 선진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기어가 오페라하우스에서 라트라비아타를 보기 전에 줄리아 로버츠에게 말한다. “오페라를 처음 볼 때 굉장히 드라마틱해! 처음이 좋으면 끝도 좋지, 처음이 싫으면 진가는 알아도 영혼으로는 못 느껴!”

최근 부산의 한 시민단체에서 착공에 들어간 오페라하우스에 대해 위법성을 제기하며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영혼으로 느끼지 못하면 경제성을 따지고 법과 제도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술은 돈 자랑도 아니고 법과 제도적인 문제도 아니다.

오페라하우스 건축 그 자체는 예술이 아니고 제도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미 착공한 오페라하우스에 딴죽을 걸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제대로 된 오페라를 경험하고 부산에서 제2의 마리아 칼라스가 탄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영혼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페라하우스에 지나친 간섭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오페라하우스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제대로 된 오페라를 보기는 했을까 하는 의문이 불현 듯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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