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만 해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오직 신이나 교회만 부여할 수 있었다.

지금은 보편화된 천부인권(天賦人權)은 영국의 권리장전(1689년), 로크와 루소 등 계몽 사상가들이 출현하면서 비로소 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776년 6월, 버지니아 권리장전 제1조에 담긴 ‘행복과 안전의 추구 및 획득(pursuing and obtaining happiness and safety)’은 한 달 뒤, 미 독립선언서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창조주에 의해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로 더욱 분명해진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람들은 서로를 ‘시민’이라고 불렀다. 혁명 선언문도 ‘인간과 시민의 권리 헌장(또는 선언)’이다. 모든 인간은 절대적 권리, 즉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갖고 태어났다는 루소의 자연권 사상을 기초로 했다. 나아가 국민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아니한 사회는 법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행복 추구권은 소극적으론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를, 적극적으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추구할 권리를 뜻한다.

우리 헌법도 행복 추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은 천부인권에 바탕한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질서다.

○…1953년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지 무려 66년 만에 낙태죄 처벌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지난 11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이 헌법불합치라고 선고했다.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낙태죄는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헌재는 낙태죄가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기본권 제한의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도 적절하다고 할지라도 기본권을 보다 덜 제한하는 수단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법적 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밝혔다.

현재 OECD 35개 회원국 중 낙태를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뉴질랜드와 이스라엘, 칠레, 폴란드 등 5개 뿐이다.

가톨릭이 국교나 다름없는 나라들도 대부분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157년 동안 낙태금지법을 유지해 온 오랜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조차 지난해 국민투표를 거쳐 낙태를 허용했다. 적어도 낙태에 국한한다면 우리나라는 시대적 흐름, 국제사회의 변화상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칸트에 따르면 존엄한 것은 가치를 따질 수 없고 인간 존엄성의 필수조건은 자유의지다.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 즉 자기결정권과 관련돼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 ‘실존(實存)’하는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생각해 볼 때, 헌재의 이번 결정은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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