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에서 실점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한 전문가는 수비수가 공만 집중하다 공격수를 놓칠 때 라고 밝혔다. 공이 아닌 사람을 놓치지 말아야 실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에너지를 둘러싼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바라볼 때 더욱 생각나는 문장이다. 한 정치인은 우리나라 에너지공급체계가 ‘섬’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갈등이 비화(飛火)됐다고 분석했다. 한정적인 수요에서 특정 에너지원 공급이 증가할 경우, 다른 에너지원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에너지원별 종사자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일 수 있다.

유럽 등 선진국들이 오랜 기간 에너지전환을 준비해온 걸 상기하면 우리 에너지정책은 정권 교체 때마다 언제나 ‘이벤트성’이 짙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사실 원자력분야만 해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 현재와 같이 재생에너지와 대치 국면에 놓인 듯한 구도는 아니었다. 일부 원전업계는 종국에 친환경 재생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갑작스러운 전기요금 상승을 예방하는 가교(假橋)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현재처럼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에너지원 간 다툼을 부추겼던 건 아니다. 에너지전환 자체를 문제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루아침에 일을 빼앗긴 종사자의 감정과 생존권을 외면한 건 아닌지 반성해본다. 이 역시 충분한 언론의 조명이 필요했을 터이다. 적어도 선악과 감정의 골로 부추기는 역할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랫동안 에너지는 생활과 밀접했지만, 정작 이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에너지는 마치 마트에서 파는 고기처럼 소비자에게 ‘사육과 도축이 없는 듯’한 상품으로 존재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살아 있는 동물의 목덜미를 물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후손까지 사용해야할 한정적인 자원의 막대한 소비와 환경오염을 초래한 기존 에너지 생산·소비방식을 ‘동물의 목덜미’처럼 느낄 만한 기회가 충분치 않았을 수도 있다. 대중이 에너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바른 정보가 주어져야 했다. 대중이 에너지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 전체 에너지시스템도 갈등보다 진취적인 방향을 향해 가지 않았을까. 짙은 아쉬움 속에서 한 발자국 더 내딛는 의지를 다져본다. 결국 사람의 에너지가 모든 에너지의 중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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