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를 꺾고 천하를 통일한 유방 한고조는 논공행상에서 장량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중의 장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리 밖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것이 자방이 세운 공로이다. 장량으로 하여금 제나라 땅 3만 호(戶)를 스스로 골라서 봉읍(封邑)으로 갖게 하라!"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부동산보다 훨씬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부족하지, 땅이 부족했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인류역사 전체를 볼 때 땅이 농산물 생산 수단이 아닌 지금과 같이 투기 혹은 투자 수단으로서 부동산의 가치가 부각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이 프랑스와 러시아로부터 구입한 루이지애나와 알래스카의 구입 가격을 보면 지금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헐값이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비싼 값에 구입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프랑스와 러시아 입장에서는 본국에서 멀기 때문에 관리도 힘들고 그 땅에 거주하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그 땅이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식량생산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또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였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근대 이후에는 질병에 대한 의학의 위대한 승리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잘사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인구 증가의 우려 때문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와 같은 산아제한 정책을 펼친 것은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70~80년대가 유일했던 것 같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 특별추계(2017~2067)’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총인구는 올해 5166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된다.

식량이 부족한 것도 의학기술이 낮은 것도 전쟁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보다 잘 살 것 같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여유가 없다는 것은 저축율이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알 수 있다. 외국의 유명 경제학자는 소득이 올라가도 저축율은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사치품이었던 것이 현재를 필수품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자동차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가 어릴 때, 친구 엄마는 검은색 ‘포니’ 자가용(自家用)에 운전기사를 데리고 다녔다. 요즘은 자가용이라는 말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감소는 심각한 문제다. 저 출산뿐만 아니라 고령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울은 낫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만큼 지방은 가파른 인구절벽을 맞게 된다. 인구가 줄어들면 병원 등 편의시설이 사라지거나 정부의 보조를 받아 운영할 수밖에 없다. 과거 한고조 유방이 장량에게 3만 호(戶)를 주는 시대로 되돌아갈 일은 없지만 결국 부동산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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